완득이의 성장 과정이 흐뭇하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완득이는 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로 키가 작은 아버지, 말이 좀 어눌한 민구 삼촌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의 앞집에는 일명 '똥주'라고 부르는 담임 선생님이 살고 있는데요. 이 선생님이 참, 챙겨주는 방식이 거칩니다.
햇반 같은 수급품을 몰래 전해주지도 않고, 반 아이들 다 보는데서 대놓고 가져가라고 호통치는 모습은 질풍노도의 시기인 완득이에게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거친 행동 속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해 주려는 담임의 따뜻한 마음이 숨어있습니다. 그는 거칠고 섬세함이 부족하지만, 절대로 약자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이 '무시'는 곧 챙김으로까지 발전합니다.
남들은 신경 쓰지 않는 외노자들을 위해 싸우다 감옥도 한 번 갔다 오는 그는 '선생님'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의 참모습을 완득이도 알게 되어, 점점 마음을 열어갑니다.
담임의 챙김 덕분에, 어쩌면 삐뚤어진 채로 잘못된 길을 걸을 뻔한 완득이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처음, 담임을 죽여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소설의 끝은 제법 흐뭇하게 끝이 납니다.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가난'이라는 속성이 결합하게 되면 대부분 삐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 더욱 움츠러들고 안으로 숨어드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왜 이렇게 잘 아냐고요? 저도 알고 싶지 않지만, 이런 청소년 시절을 살아왔거든요.
하지만, 저는 착한 친구들과 가족의 사랑 덕분에 삐뚤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완득이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힘들고 어두운 학창 시절을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가족과 주변사람들 덕분에 어떻게 잘 헤쳐 나와서 어른이 되었네요.
물질적으로는 여전히 풍족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저는 행복합니다. 정신적으로는 누구보다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거든요. 제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건 다시 말하지만, 학창 시절에 큰 아픔이나 어려움을 막아준 가족과 친구들 덕분이었습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꽤나 많은 '완득이'들이 저마다의 아픔과 괴로움을 숨긴 채 학창 시절을 살아가고 있겠죠. 남들은 누구나 추억하고 그리워할만한 학창 시절이, 성인이 된 완득이들은 그립지 않습니다.
가난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못하고, 그저 막연한 미래를 바라보며 공부만 강요하는 학교의 생활이 굉장히 갑갑하거든요. 억지로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가난' 때문에 남들의 안 좋은 시선을 견뎌내야 하며 살아갔던 그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그 삐뚤어지기 쉬운 환경 속에서, '완득이'들을 섬세하게 챙길 수 있는 담임 같은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저 또한 그런 어른이 되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던 소설 <완득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