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작가님의 문학
<일간 이슬아> 수필집으로 유명한 이슬아 작가님의 소설책 <가녀장의 시대>를 읽었습니다.
읽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냥 이슬아 작가님이니까요.
수필집을 워낙 재밌게 봤었던 저는 자연스레 소설도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소설집은 독특하고 신선했던 <일간 이슬아>만큼이나 특이합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에세이와 소설 그 중간의 어느 지점이랄까요.
소설로 쓴 에세이 같기도 하고, 에세이로 써 내려간 소설 같기도 합니다.
전형적인 소설의 플롯,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 면에서는 에세이 같습니다.
커다란 갈등도 없고, 각 챕터는 어느 큰 이야기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지 않습니다. 그저 재밌고 소소한 일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줄 뿐입니다. 결말도 평화롭게 끝이 납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감정선이 특정 시점에서 서술되는 점은 소설 같습니다. 소설의 행태를 택한 이유는 제가 생각하기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좀 더 매끄럽게 담아낼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에세이에서도 그들에 대한 사랑이 덤덤히 담겨있는 걸 느꼈지만, 소설은 또 다른 느낌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는 느낌이랄까요.
그 독특함 때문에, 읽고 나니 에세이와 소설 두 권을 전부 읽은 듯한 기묘한 만족감이 차올랐습니다.
소설의 주요 무대는 낮잠 출판사이며, 등장인물은 슬아, 복희, 웅이입니다.
그들은 가족이지만 동시에 낮잠 출판사의 조직원이기도 합니다.
대표이사는 슬아입니다. 슬아는 출판사를 세운 장본인이며, 수입을 벌어오는 주체입니다.
슬아의 어머니 복희는 집안의 요리를 담당합니다. 비건이면서도 된장찌개를 필수로 여기는 사장님에게 아주 귀중한 인력이죠. 아버지 웅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안의 청소와 운전, 가구 조립 등등 잡무를 담당합니다. 문학 소년이었던 웅이는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어떠한 일이든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인부가 되었습니다. 슬아는 그의 아버지를 보며 생각합니다. 분명, 이건 재능의 영역이라고. 어머니의 요리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슬아는 그들의 재능과 노동을 임금을 주며 고용했습니다.
덕분에, 슬아는 글에만 집중하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는 유기적으로 가족 간의 관계로 변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잘 지켜져 나갑니다. 그녀는 배려 깊은 사장입니다.
청소를 열심히 하는 웅이를 위해, 무선 청소기를 복지차원에서 결제해주기도 하고(물론 아버지는 그걸 거절합니다.) 된장을 담그는 비법을 복희가 그의 가족들에게 전수받기 위해 출장 갈 때는 '된장 출장비'를 지급합니다. 이런 복지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그들의 노동을 존중하고 대우해 준다는 뜻이니까요.
이 가족회사의 구조에서, 권력은 당연히 슬아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사장이며, 열심히 글을 쓰고 출판사 운영을 하며 돈을 벌어오니까요.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주체가 자연히 권력과 위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주체가 전통적으로 아버지였던 옛 세대는 가부장의 시대였죠. 하지만, 슬아는 부모의 가사노동을 인정하고 임금을 지급해 줌에 따라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붕괴시킵니다. 딸이 부모를 고용하는 구조는 서로에 대한 독특한 존중을 발생시키며, 그 관계 속에는 권위와 위계질서가 조직의 운영을 위해서만 존재하게 되거든요.
단어, 소재, 구조 자체가 신선하다 보니 독특한 재미가 있습니다.
이슬아 작가님 특유의 무덤덤하지만 통찰력 있는 문장들도 곳곳에 숨어서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종합하자면, <일간 이슬아>에서 봤던 수필의 내용들이 소설의 형식으로 입혀져서 나온 느낌이랄까요.
기록하지 않는 자유와 기록되지 않는 자유 속에서, 하루하루를 시냇물처럼 졸졸 흘려보내며 그는 TV를 본다.
작가의 삶을 살지 않는 모부를 보며 슬아는 부러워하는 장면입니다.
창 밖을 보며 저녁부터 시작될 두 개의 원고 작업을 생각한다. 그 원고들을 마감하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한껏 게을러야 그때 부지런해질 수 있다는 게 슬아의 생각이다.
사람이 항상 부지런할 수 없음을, 부지런하기 위해서는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시간도 있어야 함을 나타낸 문장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소설이 가지는 결말 구조가 없다는 것입니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로 이루어지는 이 이야기 형태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뻔하기도 합니다.
어떤 소설들은 너무 지나치게 뻔한 흐름과 클리셰 때문에 읽다가 흥미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갈등이나 불필요한 요소 때문에 읽으면서 제가 괜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힐링 소설에서 이야기 전개를 위해 등장하는 갈등은 어쩔 땐 좀 읽기가 싫더군요. 뻔하고, 억지로 끼워 넣은 요소처럼 읽힐 때가 있어서요.
하지만, <가녀장의 시대>는 특별한 갈등이 없습니다. 각 화마다 소소한 갈등 같은 것이 등장하긴 하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을 관통하는 갈등은 아닙니다. 그저 그 화에서 끝나버리는 사소한 갈등이죠. 그래서 더 마음 편하고 긴장감 없이 읽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이런 구조를 택하기 위해서는 별다른 긴장감요소 없이도 독자를 몰입시킬 수 있어야 하겠죠. 이 몰입요소는 작가님의 문장과 독특한 소재와 컨셉으로 충분히 몰입이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론 그렇게 느꼈습니다.
작가님의 다음 소설이 기대가 됩니다. 작가님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작가님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본 특정 인물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