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렀던 사회생활을 보낸 2022년의 나.
어떤 직장을 가건, 첫 한 달은 조직 적응을 위해 필요한 기간이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걸 떠나서, 업무를 서서히 배우는 맛보기 단계랄까?
한 달이 지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업무가 시작되면서 예상보다 일이 어렵거나 고된 곳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 기간제근로는 일주일 만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 일주일은 그냥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아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나 책을 눈치 안 보고 해도 되나?에 필요했던 시간.
처음에는 어색하게 책을 펼치거나 모니터로 공부를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정말 당당하게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가끔 일거리를 주실 때에는 조금 어려운 엑셀 작업 일려나 긴장했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내가 딴 컴활 1급 자격증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러니깐, 여기서는 아예 엑셀을 쓸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글도, 엑셀도, 파워포인트도 거의 다룰 일이 없었고 그냥 가끔 현장 작업에 필요한 손만 빌려주면 되었다.
한 달 동안은 정말 아무 일이 없었기에, 나는 근무시간에 토익을 공부했다.
공부하는 틈틈이 밀리의 서재로 여러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공부하고 나서 토익을 치고 나니 880점이 나와서 내심 뿌듯했다.
11월 중순쯔음에는 기사자격증 실기 시험도 있었기에 토익이 끝나자마자 바로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면서 돈을 받는 나날들이 계속될수록, 나는 그저 행복했다.
분명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근무시간에 나름 치열하게 공부해서 스펙을 더 높인 것은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자진 퇴사로 인한 5개월간의 짧은 공공기관 근무경력과 분야가 전혀 다른 기간제근로의 경력.
이 두 경력은 사실상 없는 경력이나 마찬가지였음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스펙에 집착했던 것 같다.
남들이 소중한 경력을 쌓는 시간 동안 나는 되돌아가고 있었지만, 분명 이 시간은 그리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되돌아가본 사람만이, 좀 더 다양한 길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고 변명하고 싶다.
쭉 뻗은 직선의 길을 걷는 사람은 멋지고 시원시원하지만, 곡선의 부드러움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나는 직선에서 이탈해서 곡선으로 올라탄 안일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나 자신에 한해서 이 시간은 분명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직선을 잘 달리고 있는 사람에게도 권장하고 싶을 만큼.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마냥 일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었다.
농업 관련 센터이다 보니, 11월에 행사가 두 개 정도 있었다.
한 번은 코엑스에서 열리는 강소농대전이라는 행사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우리 지역의 작지만 강한 농업인들(강소기업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의 농산품을 소개하고 홍보해 주는 행사였다. 전국의 모든 강소농들이 참석하는 행사이다 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큰 행사였다.
거기 부스에서 3일 동안 상주하면서 농산품을 소개하고, 직접 판매도 해야 했다.
원래는 참석한 농업인들이 하는 게 맞지만, 일손이 부족해서 나도 직접 소개를 하고 홍보도 했었다.
뻘쭘하지만 생각보다 재밌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여기 센터를 다니지 않았으면, 평생 이런 행사는 참석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행사는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을 맞이하여 센터에서 자체적으로 개최한 행사였는데, 나는 딱히 특별한 일이 주어지진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과 농업인들이 참석을 하니 안내하는 스태프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뜬금없이 교통정리를 맡아야 했다.
경찰들이 보통 들고 다니는 그 봉을 들고 차를 안내하고 교통을 통제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나이 많으신 기간제근로자 분들이 베테랑다운 숙련자 모습을 보여주셔서 나는 정말 뒤에서 간단하게 손만 휘적거렸다.
이렇게 적고 보니 두 행사도 정말 별거 없었고 나는 딱히 한 일은 없었던 거 같다.
계속해서 말했듯이, 워낙 일이 없었다 보니 이 두 행사가 그나마 나름대로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인가 보다.
하지만, 이 두 행사가 끝나고 나의 계약종료도 다가온 11월 말에 나는 꽤나 중대한 일 하나를 맡게 된다.
바로, 센터에서 1년에 한 번 책자 같은 것을 발행하는 것이 있는데 그 원고의 초고를 내가 작성하게 된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잡지의 어느 한 챕터를 맡아서 작성하는 단순한 일이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귀찮고 의미 없어하는 일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찾게 되었다.
내 글쓰기의 시작은 바로 이 날부터였다.
처음에 주어진 글쓰기는 막막했다.
농업인들을 소개하는 글쓰기를 써야 했기에 인터뷰는 필수였는데, 인터뷰를 할 여건이 안되었다.
출장까지 가서 질문을 할 정도는 아니었고, 블로그나 인터넷, 유튜브 등을 통해 몇 가지 정보와 소재거리를 찾은 뒤 창작에 가까운 글쓰기를 해야 했다.
물론, 그 창작이 주인에게 맞는지 한 번 원고를 보내서 검토를 받아야 했음은 필수였다.
어찌 보면 독후감이나 리포트나 다름없었던 글쓰기였는데, 이상하게도 재밌었다.
생각해 보니 대학시절 교양시간에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적는 리포트가 있었는데 그 리포트도 되게 재밌게 했었고 교수님께 좋은 평을 받았었다.
이번 글쓰기도 주무관님께 좋은 평을 받았다.
꽤나 시적이고 감성적으로 잘 썼다고 했으며, 위에 팀장님과 과장님도 별다른 소리 없이 최종승인이 났다.
뭐, 윗분들이야 어떻게 썼든 거슬리는 내용 없이 술술 읽히기만 했으면 됐겠지만.
어쨌든, 이번 글쓰기는 그저 일 때문에 했었던 일이었는데, 내 마음엔 생각지도 못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독서만 하는 "인풋"행위만을 즐기던 내가 본의 아니게 "아웃풋"인 글쓰기를 하게 된 것.
이것만으로도 내가 여기서 얻을 것은 전부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공적으로 원고를 작성하고 나서, 그 뒤로는 더 이상 한 것이 없었다.
자격증 공부도 다 끝났었고, 더 이상 딸만한 자격증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나는 무작정 책만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눈이 많이 쌓이면 제설 작업에 동원되었다가, 겨울맞이 간단한 행사를 하면 소품 옮기는 작업에 동원되는 것 말고는 업무가 없었다.
잡지를 성공적으로 작성해 드린 것만으로 주무관님은 만족하셨는지, 더 이상의 업무도 주지 않았다.
고요했던 겨울만큼이나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그렇게 나의 근무 마지막날이 다가왔다.
팀원분들과 마지막 점심을 먹고 난 후 짐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나니 오후 5시가 되었다.
과장님이 마지막 날은 조금 일찍 가도 되지 않겠냐고 해서 5시쯤부터 센터 사람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형식적이지만 약간은 따뜻한 수고 인사를 받고 난 뒤, 나는 건물 밖을 나왔다.
춥디 추운 한겨울이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뒤돌아본 건물은 첫 회사와 달리 무정하고 쓸쓸하지 않았다.
언젠가 또 찾아오고 싶은 정감 가는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 듯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사거리를 지나면서 근처의 학교들이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 있었던 거리였는데, 겨울방학 기간이었기에 학생들이 없던 학교는 고요했다.
학생들처럼, 나도 그렇게 겨울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기간에 나는 학생들의 겨울방학처럼 딱히 생산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으나,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되었다.
그 시도의 중심 활동은 "글쓰기"였고, 글쓰기를 위해 또 많은 책들을 읽었었다.
고독한 겨울이었지만, 내 마음은 겨울잠을 대비한 곰의 배처럼 풍성해졌다.
2022년 봄이 다가올 무렵에 상경했던 나는 2023년의 겨울이 시작할 무렵에 두 번의 직장을 경험했다.
둘 다 제대로 된 정규직도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배울 게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2023년의 겨울을 보낸 나는 같은 해 봄에 다른 기간제근로자를 한 번, 그리고 여름부터 겨울까지 체험형 인턴을 하게 되면서 다시 행복한 시절을 보내게 된다.
사회의 커리어적 관점으로 볼 때는 또 아무런 쓸모도 없었지만, 이때의 몇몇 시행착오를 겪었던 덕분에 지금의 글 쓰는 내가 탄생할 수 있었다.
2023년의 봄을 얘기하기 전에, 실업급여를 받으며 공부하고 여러 시도를 했던 나의 겨울을 말씀드려야겠다.
빠르게 취업하려 했으나, 진로 고민과 마땅한 채용공고가 없어서 곰처럼 동굴에 갇혀있었던 그 시절.
나는 이 동굴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인생의 방향을 확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