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에 넣을 수도 없는 알바나 다름없었지만..
8월의 무더운 여름.
수입이 0원이었던 나는 카페에도 가지 못한 채, 방구석에서 열심히 채용공고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생활비는 퇴사한 7월 말에 신용카드 결제 대금을 치르자마자 바로 바닥이 나버렸다.
8월의 결제대금을 치르려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이제는 내 전공분야인 환경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공공기관 쪽에서 일만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일이라도 하리라.
사실, 7월에 퇴사하자마자 농업 분야 쪽으로 지원한 곳이 하나 있었다.
서류는 당연히 통과였고 면접도 봤었지만 나는 불합격이라는 쓴 맛을 봐야 했다.
살면서 생애 두 번째 면접이었고 첫 불합격을 받았던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면접을 정말 잘 봤었기에 떨어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사업소개와 이벤트까지 전부 달달 외워간 나는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했고 면접관님의 반응도 정말 좋았었다.
"오.. 정말 열심히 준비하셨네요"라는 말도 해주셨으니 말이다.
출퇴근은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까지 나왔었기에 나는 합격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든 생활비를 다시 벌 수 있겠구나!
다행히 마이너스 통장을 뚫을 필요도 없고 인천에서 계속 자취를 할 수 있구나!
내심 뿌듯해하면서 면접을 마치고 돌아왔었다.
그렇게 합격발표까지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하던 나는 발표날에 불합격 안내를 받고 안내를 잘못받은 게 아닌가 싶었다.
도대체 왜??
면접 대기실에서 봤던 다른 지원자 분들은 전부 중장년층의 어른분들이었다.
면접 복장도 나만 정장을 입고 왔었기에 더 좋은 점수를 받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왜?
이래서 면접은 결과 나오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건가?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왕이면 젊은 사람을 뽑아줄 텐데 왜 내가 떨어졌을까? 대체 무슨 일이지?
나의 이러한 의문들은 9월에 합격 후 근무를 하면서 풀리게 되었다.
그냥 단순했다.
기존에 근무를 하셨던 분이 또 지원을 하시면 계속해서 그분을 쓰는 게 전부였다.
소위 말하는 내정자라는 것이다.
내가 불합격했던 이유는 이미 이전에 근로를 했던 분이 면접을 보러 왔었기에 떨어진 거였다.
지금에서야 내정자를 뽑았던 그 센터에 대한 불만은 없다.
나 같아도 새로운 사람을 뽑는 것보다 기존에 별 트러블 없이 일을 했던 사람을 뽑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7월의 나는 진짜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생활비도 없는데 기간제근로까지 떨어진 나는 어디서 돈을 벌어야 하나?
아르바이트라는 대안도 있긴 했으나, 뭔가 경력을 쌓거나 공부를 해야 하는 이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아닌 것 같았다.
기왕이면 공공기관 쪽의 사무직인 게 조금이라도 더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무작정 다른 채용공고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환경 분야 공공기관의 어떤 자리이건, 닥치는 대로 지원하여 일을 하겠다는 헝그리 정신으로.
그러나, 세상은 무정했다.
가장 무더운 여름의 7~8월의 시기에, 채용 시장은 얼어붙어 있었다.
내가 불합격했던 센터에서 또 다른 채용공고가 뜰 때까진 별다른 공고가 없었다.
도서관 기간제근로자나, 임업 관련 현장직이 있긴 했으나 너무 분야가 달라 이쪽은 지원하기가 좀 그랬다.
인천이 아니라 서울 쪽의 기간제근로자 채용공고도 살펴봤으나, 거주지가 인천인 나에게는 지원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의 생활비를 마이너스 통장으로 버티고 있었다.
마이너스 통장도 한도가 꽉 차서, 이제는 정말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채용공고가 또다시 떴다.. 한 번 탈락했던 센터의 다른 부서에서 뜬 채용공고였다.
약 3개월간의 짧은 계약기간 동안 단순 사무업무 보조를 뽑는다는 그 공고에는 컴활 1급 자격증을 가진 사람에게 5점이나 가점을 줬었다.
때 마침 컴활 1급 자격증을 취득했던 나는 이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떨어지면, 미련 없이 알바를 바로 하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서류를 넣었다.
예전에 탈락했던 자소서를 조금 수정하여 제출하였고, 서류는 당연히 통과였다.
기사 4개, 컴활 1급이라는 스펙에다가 자소서까지 정성스럽게 쓴 20대 후반의 청년이었으니.
바로 다음 주에 면접이 잡혔고,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나는 풀정장을 입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홈페이지에 있는 사업공고와 이벤트까지 싹 다 외워간 나는 자신만만했지만, 면접 대기실에 들어서자 긴장되었다. 중년의 여성 분이 두 분 계셨고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도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내 또래 남자도 당연히 정장차림이었고 무언가 종이를 뽑아서 달달 외우고 있는 모습을 보자, 내 자신감은 한 풀 꺾였다.
또래 남자애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뭔가 모르게 똑 부러지는 이미지였다.
나는 그때 라섹을 하고 한창 안경을 안 쓰는 기쁨을 누리고 있었어서 맨눈으로 왔는데 약간 후회됐다.
어차피, 저번에 면접을 봤었을 때 질문은 딱히 어렵지 않았어서 첫인상 싸움이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면접은 이번에도 내가 제일 먼저 보게 되었고 면접을 보러 회의실에 들어가니 면접관 3분이 앉아있었다.
저번과 똑같은 배치였고 면접관만 약간 달랐다.
자기소개를 간단히 시작한 후 사업에 대한 질문과 인성 관련 몇 가지 간단한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고 나니 면접이 바로 끝나버렸다.
저번에 한 번 면접 봤던 사실을 면접관님들이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나쁜 신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분위기도 저번처럼 나쁘지 않았고 면접도 잘 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합격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면접 대기실에서 봤던 중년층 면접자가 내정자일수도 있으니까.
합격 확신이 없었던 나는 면접 발표날까지 다른 채용공고를 뒤적거렸다.
지자체 홈페이지의 채용공고와 청년인턴 사업과 같은 공고는 이미 끝났었기에, 결국 아르바이트를 찾아봤다.
서점 알바 후기와 카페 알바 후기, 영화관 알바 후기 같은 것을 보면서 무엇을 할지 고민했고
좀 괜찮아 보였던 아르바이트는 즐겨찾기도 해놨다.
불합격하면 그냥 바로 이력서를 다 넣어서 지원하겠다는 생각으로.
시간은 또 금방 흘러 면접합격자 발표날이 되었는데, 그날의 시간은 어찌나 안 가던지.
오후 3시가 지났을 무렵, 뜬금없이 날아온 합격문자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합격문자를 받자마자 나는 그동안 즐겨찾기 해놨던 다른 채용공고와 알바자리들을 전부 해제하였다.
이미 마이너스인 통장으로 치킨과 맥주를 사서 자축하던 그날의 밤은 정말 행복했다.
그 행복이 이번 기간제 근로에서 이어지길 기원하며 나는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그때 먹은 치킨이 행운의 치킨이었는지 나의 3개월간 기간제근로는 닭가슴살과 같은 뻑뻑함이 아닌 닭다리살같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어떤 분야의 어느 기관을 가든 첫날의 근무는 항상 떨리는 법이다.
특히나, 이번 기간제근로는 동기도 없이 나 혼자였으니 말이다.
9시 출근이지만 첫날은 역시 8시 40분 정도가 적당하다 생각한 나는 딱 그에 맞게 도착했다.
내가 근무할 부서 이름이 적힌 사무실을 발견하고 노크를 한 후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열자마자 딱 느낀 점은 사무실이 좀 좁은 느낌이었다.
한 눈에 바로 사무실이 눈에 다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팀은 나 포함 4명이었고 다른 팀도 5명뿐이었다.
그 두 팀을 관리하는 과장님 한 분까지 포함해서 총 10명만 쓰는 사무실은 아담하면서도 포근했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들 원래 친절하지만 사무실의 분위기가 막 긴장감이 흐르고 차가운 느낌이 아니었다.
오자마자 내 또래처럼 보였던 여자 주무관님이 청사를 가볍게 소개해주었다.
앞으로 내가 업무를 보조해 드릴 주무관님이었는데 친절하셨고 잘 웃으시는 분이었다.
청사 주변에는 아무래도 농업 관련 센터였다 보니 밭들이 제일 먼저 눈에 보였다.
생각보다 다양한 색깔의 작물들이 심어진 밭은 알록달록했다.
농기계 임대 창고도 있었고 비료를 관리하는 건물들도 있었는데 커다란 건물은 아니었다.
10분도 되지 않아서 청사 구경이 다 끝났고 자리에 앉으니 사업 관련 소개 책자를 받았다.
처음 딱 봤을 때 조금 어려웠어서 긴장하면서 정독을 했는데 일하면서 한 번도 다시 펼칠 일은 없었다.
내가 맡게 된 업무가 너무 단순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주무관님의 업무를 보조하는 게 전부였는데 내가 보조할 수 있는 게 몇 개 없었다.
농업인 교육 쪽을 담당하다 보니, 한 달에 1번 정도 농업인들이 센터에 와서 교육을 들었는데 그 교육을 듣는 강의실을 준비하는 것.
가끔 출장을 가게 되면 허드렛일을 도와드리는 것.
자리를 잠깐 비우셨을 때 받아온 전화를 받아서 메모해 드리는 것.
이 3가지가 대부분의 업무였다.
일이 정말 없었기에, 주무관님도 말씀해 주시길
"일 없을 때는 본인 개인 공부나 다른 활동을 하셔도 됩니다."
당연히, 내가 앉은자리는 지키는 조건이었다.
대부분의 근무시간에는 일이 없었기에 나는 마음껏 개인공부를 하고 공부가 싫증 나면 책까지 읽었다.
일이 있을 때는 가끔씩 교육을 받으러 오는 민원인 분들을 안내해 드리고 현장일을 잠깐 하는 게 전부였다.
이전 직장에서 매일 민원에 시달리고 의미 없는 일을 반복했던 나는 이곳이 너무나 좋았다.
이 편안함과 안락함은 분명, 내 경력에 안 좋을 거라는 직감은 있었지만 당시에는 솔직히 알 바 아니었다.
다른 주무관님들도 대체로 전부 친절하셨고 나는 그냥 사무실에 잘 앉아있고 가끔 시키는 업무 열심히 한다는 것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황송했다.
출근이 전혀 힘들지 않았고 일요일 밤의 우울함도 없었다.
오늘은 무슨 공부를 하지? 어떤 책을 읽을까?라는 행복한 고민만 있었을 뿐.
그냥 독서실 인턴이나 다를 바 없었다.
출근해서 해야 할 공부를 마치고 난 후, 저녁에는 책을 읽었다.
공부를 근무하면서 다 해버렸으니 퇴근하고 나면 온전한 내 자유시간이었다.
해야 할 공부를 다 한 나는 죄책 감 없이 게임도 하면서 하루하루 행복한 날을 보냈다.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살았었는데, 더 만족스러운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계약만료 후 실업급여를 받게 된 2023년 1월 ~ 5월의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나는 글쓰기와 관련된 여러 플랫폼과 분야에 도전해 보면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밑거름을 쌓아갔다. 그 시절을 말하기 전에, 이 3개월간의 기간제근로를 하면서 있었던 일을 좀 더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다.
첫 회사와 달리, 정말 행복했던 나의 시절이었기에 좀 더 곱씹어보고 싶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