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학 리뷰

사랑으로 바라보는 <작은 땅의 야수들> 해석

잔혹한 운명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by Nos

INTRO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는 너무 가벼웠습니다.

친구집에 의자 설치를 위해 도와주러 갔는데, 친구가 이 책을 읽고 있더군요.

호랑이 등가죽이 그려진 표지가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친구가 앞부분을 읽고 있는데 되게 재밌었다고 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읽는 순간, 이 소설은 가볍게 읽을만한 소설은 아닌 걸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의 주요 배경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부터 독립 및 근대화 시대를 맞이하는 1960년대까지입니다.

일제시대속에서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일본인들은 어떤 식으로 우리를 탄압했는지의 얘기들이 흘러가지만 소설의 주요 핵심내용은 '사랑'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투쟁, 치열한 전쟁 이야기라기보다는 여러 인물들의 얼룩진 사랑 이야기입니다.

뭔가 딱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한국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과 비슷했네요.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 주요 이야기의 결과나 흐름은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인물들의 내면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몇몇 내용을 스포 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등장인물 & 이야기의 흐름


소설에는 그렇게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분량이 600p로 꽤나 많은 분량이긴 하지만, 인물들의 대서사시를 그려나가는 데 있어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면 흐지부지 되기 때문입니다.

<작은 땅의 야수들>에서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재밌게 풀어져 나가고 있지만, 가장 주요한 등장인물은 결국 두 인물입니다.


1. 사냥꾼 아버지를 닮아 기개와 담력이 있는 정호.

2. 평범했지만 점점 뛰어난 미모의 무용수가 되어가는 옥희.


이 두 인물들이 결국 소설에서 가장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그 외의 인물들의 이야기도 상세히 다뤄지고 있지만, 결국 옥희와 정호의 배경이 되어 줄 뿐입니다.

다른 인물들을 몇몇 더 소개해드리자면,


3. 옥희를 거두어준 단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단이의 딸 월향과 아름답진 않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연화.

4.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머리가 좋은 인력거꾼 한철.

5.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성수와 역시 풍족하지만 좀 더 큰 대의를 생각하는 명보.

6. 부유한 일본 군인들인 야마다 겐조이토.


이렇게 인물들이 등장하여 각기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이익을 가지고 소설에서 대립합니다.

그 대립은 누군가는 독립을 위한 투쟁으로, 누군가는 이루지 못했던 사랑과 그 사랑으로 인한 질투로, 또 누군가는 그저 자신의 이익이나 추악한 본성이 원인이 되어 각자의 싸움을 이어나갑니다.

그 싸움의 끝은 결국 허무하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삶은 결국 애석하게도 흘러가기에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인상 깊었던 문장들


사랑이란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느냐에 따라 정의


사랑은 너무나 광범위하기에, 다양한 해석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떠올려지겠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기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수하느냐에 따라 정의됩니다.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수하고 인내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정의 내려지는 이 사랑의 해석이 그저 슬플 뿐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내일 옥희를 만나면 이 모든 것을 그에게 설명해 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세상 무엇보다 안전하게 지켜내고 싶은 사람이 바로 옥희라는 것도 말해주고 싶다.


정호의 속마음이 드러난 대사입니다.

인생으로 시작된 내용이지만, 결국 그 끝은 옥희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 내려집니다.

정호의 사랑은 누군가를 끝까지 안전하게 지켜내겠다는 그 의지로 해석되는 듯합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안전하지 않은 시대적 상황을 살아가는 정호에게, 사랑은 누군가를 지켜주기 위한 울타리로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호는 자신의 인생에서 옥희를 지켜주고 싶었고, 그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곧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이 정호의 살아가는 원동력이었고 사랑이며, 결국은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야마다 대좌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자신이 느껴야 하는 감정이 종종 일치하지 않고 어긋나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혹시나 그게 자신을 방해하고 나약하게 만드는 취약점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그는 스스로의 의지력을 시험하고자 내심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의도적으로 해나가는 습관을 들였다. 그렇게 일부러 감방 근무에 지원해, 거칠고 힘든 훈련만이 결국 자신을 강하게 만들 것이라 믿으며 격렬하게 노력하는 운동선수의 신념을 가지고, 가장 악명 높은 반란군들에게 채찍을 휘두르곤 했다. 그러니 그와 비슷한 고행의 맥락에서, 연애 상대로도 혹은 평범한 사람으로도 미네코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음에도, 야마다는 아무런 감정 없이 대답했다.


어찌 보면 맥락 없고 개연성 없이 느껴질 충동적인 결정을 세련되게 풀어낸 문장이라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결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그저 아무런 관심 없는 대상을 그냥 혼처로 맞이하는 그의 결정이 이해됨과 동시에 야마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었습니다.


야마다에게 있어 사랑은, 어찌 보면 그저 고행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 듯하네요.

그의 냉철하고 투쟁적인 삶에 있어 사랑은 어쩌면 또 다른 투쟁이었을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겐 일생일대를 살아가는 추억이자 힘이 되기도 하고, 삶을 살아가는 의미가 되는 사랑이,

야마다 겐조에게 있어서는 그저 삶의 수단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자신의 의지력을 시험하고자 하는 고행 중 하나의 카테고리였을 뿐인 것이죠.

그의 내면은 너무나 삭막하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꽃은 피어날 수 없나 봅니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에.


야마다 겐조와는 반대로, 옥희는 사랑이 삶 그 자체인 듯합니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삶을 살아가는 가장 주요한 원동력입니다.

그 사랑이 지금 지속되지 않고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은 듯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에 대한 기억(과거)조차도 현재를 살아감에 있어 가장 큰 힘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옥희에게 사랑으로 행복했던 시절은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사랑도 꽃 피어났지만 꽃은 금방 시들어버렸습니다.

그 꽃이 시듦과 동시에, 기쁨과 영광으로 가득 찼던 그녀의 삶도 서서히 시들어갔습니다.


옥희의 삶은 분명히, 기생들이 누렸던 남자들의 사랑의 혜택을 누리진 못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조금만 유명한 기생들은 전부, 남자들의 후원으로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갔습니다.

사실 그 남자들의 사랑은 전부, 돈으로만 여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얻고자 하는 왜곡된 표현이었지만요.

옥희도 이런 경제적인 혜택을 받을 기회는 차고 넘쳤지만,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전부 거절하였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로, 그녀는 분명히 가장 찬란한 사랑을 받고 주기도 했지만, 결국 그 사랑도 저물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저물었다고 해서 삶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꽃이 지더라도, 계절이 흐르듯 삶도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봄이 끝나버린 그녀에게, 인생은 계절과 달리 곧바로 겨울이 다가와 차디찬 시련을 안겨주지만 그녀는 꿋꿋이 살아갑니다.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끝나버렸고, 자신을 사랑해 주고 자신이 사랑했던 이들 전부 그녀의 옆에 없지만 그래도 그녀는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사랑이 삶 전체에서 녹아든 옥희는 분명, 누구 못지않은 부유함을 누리는 야마다 겐조보다 더 행복할 겁니다. 풍족하지만 차가운 겨울보다는, 부족하더라도 따뜻한 봄이 옥희에게 더 행복을 안겨줄 거니까요.

옥희는 언제나 안락하고 풍족하지만 허망한 현실보다는, 메마르지만 진정한 행복을 위한 이상을 찾아 나선 강인한 인물이었습니다. 옥희가 사랑을 기억하는 한, 그녀의 삶은 분명 예전의 찬란한 봄만큼은 아니라 할지라도, 꽃잎의 흔적이 역력한 봄길일 겁니다.


그 길도 분명 또 다른 향기를 뿜어낼 것이니, 옥희는 사뿐히 걸어 나갈 거 같네요.


END


어찌 보면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이지만,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 ~ 근대화 시대라서 조금 더 특별했던 이야기. 여러 인물들의 갈등과 대립의 주요 주제는 결국 '사랑'이었으며,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각자의 사랑은 약간씩 비틀려버린.. 그래서, 다들 조금씩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미스터 션샤인>을 재밌게 보신 분들이라면, 이 소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상으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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