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같아 보이는 길도, 계속 걷다 보면 이어져 있을 수 있다.
제가 웹툰 작가님들 중에 좋아하는 작가님이 한 분 있습니다.
바로 쥬드 프라이데이님인데요.
수채화로 그린 듯한 작화에, 유려하고 감성적인 문장들, 아름다운 은유들 모두 제 취향이어서 모든 작품들을 다 봤습니다.
한 번 읽고 몇 년 동안 안 보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들렀는데 만화책이 떡하니 꽂혀있기에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읽은 책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읽히더군요.
그 내용들을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만화의 주된 내용은 사랑과 꿈입니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시나리오를 작성하던 희수,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미키가 두 메인 주인공이고
나머지 캐릭터들은 서브캐릭터이지만 각자의 스토리를 가진 캐릭터로써 등장합니다.
각자 사랑 때문에 아팠던 상처들이 있고, 그 상처들을 치유하기 위해 길을 걷기 시작한 두 주인공.
길을 걸으며 보이는 풍경들이 그들을 위로해 주지만, 더욱 위로가 되었던 것은 결국 두 사람의 대화였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걷다 보니, 서로가 겹쳐져서 걷는 시간이 생기기도 하고 다시 떨어져서 걷는 시간이 생기기도 합니다. 서로 이어질 수 없는 나란한 평행선을 걷는 것 같다가도, 어느샌가 둘레길이 되어 마주하기도 합니다.
격정적이거나 휘몰아치는 전개는 없고, 오히려 허무맹랑하게 확 흘러가버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잔잔하고 색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결말은 어찌 보면 뻔할 수 있지만, 그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생각들이 뻔하지 않아서 재밌는 만화였습니다.
그 문장들을 몇 개 정도 살펴보겠습니다.
난 도망치는 게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생각엔 마지막까지 도망치지 말아야 할 건 자기 자신으로 부 터지. 다른 그 무엇도 아니에요. "도망치면 안 돼"라는 문장이 마치 주문처럼 사람들을 절벽으로 몰고 가죠.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자신을 버리는 것이 되기 전에, 나는 차라리 "도망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괜찮아. 그건 비겁한 게 아니야.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난관과 상황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1. 맞서서 극복하거나 2. 도망치거나.
보통은 도망치지 않아야 한다고 배우기에, 우리는 미련할 정도로 버팁니다.
하지만, 그 버팀의 과정이 너무 힘든 나머지 자신을 버리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학업이나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는 분들을 우리는 가끔 뉴스를 통해서 만나게 되죠.
그런데, 누가 "도망치면 안 돼"라고 하던가요?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을 극복하면 성장하고 강해지는 것은 맞지만, 그게 너무 힘들다면 도망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요? 무턱대고 바로 도망쳐서는 안 되겠지만, 스스로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버텼는데도.. 도저히 안될 거 같으면 도망치는 게 맞습니다.
설령,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무너져서 없어질 지경이라면 버텨서는 안 되겠죠. 가족들도 그걸 바라진 않을 테니까요.
우리가 그렇게까지 해서 버틴 길의 여정 끝이 낭떠러지라면, 버티는 이유가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나 자신인데, 그 자신이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된다면 어서 빨리 길을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도망은 비겁함이 아니라, 또 다른 용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미련하게 버티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요.
시계는 늘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지만, 시간은 절대로 시계처럼 흐르지 않아.
작품 속 은희수가 갑작스럽게 감독으로 데뷔하여 정신없어할 때, 친구가 해주는 말입니다.
시계는 그저 시간을 재기 위한 도구로써, 1초씩 일정한 간격으로 시간을 재줄 뿐입니다.
실제, 우리의 시간은 시계와 다르게 흘러가죠.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들은 고통스럽고, 조용하면서도 끈적하여 사람을 갉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 꿈에 점점 가까워지고 술술 풀려나갈 때면 쏜살같이 흐르겠죠? 지나고 나면 다 흘러가버린 시간이지만, 분명 다르게 흘러간 시간들이 있을 겁니다. 시계는 기계일 뿐이지만, 시간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 깃들여져 있으니까요.
대형마트에 오면 인류의 다양성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요. 타인의 취향도, 생각도 그렇게 가볍게 받아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여러 가지 색이 있는 걸 인정하는 것처럼.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상품들이 있기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제품들도 많습니다.
그 제품들이 모두 대형마트에 버젓이 팔리는 걸 보며 주인공 무리가 하는 말입니다.
누가 봐도 안 살 거 같은, 정말 이상하게 생긴 제품들도 마트의 진열대에서 상품으로 인정받아서 자신을 진열하고 있는데 왜 사람은 다양성을 상품보다 덜 인정받는 걸까요? 각자의 개성과 취향은 무시된 채, 획일화된 성격으로 조직생활을 해나가는 우리 사람의 모습을 마트에 비유하며 풍자한 것이 재밌었던 문장이었습니다.
공기원근법, 그건 사물과 자신 사이에 수많은 공기의 층이 겹쳐지기 때문에, 멀어질수록 흐려지게 되는 거죠. 전 기억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쁜 기억에서 멀어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죠. 새로운 일들이 하나둘 쌓이고 쌓여, 지나간 일들을 가려주겠죠. 때문에, 아픈 상처가 마음을 찌를수록 우리는 앞으로 가야 해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결국 고통을 피할 수 없기에 안 좋은 일을 겪고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잠시 멈추어 서서 휴식을 취해야 하죠.
하지만, 그 휴식이 너무 길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멈추어버리면, 우리의 삶의 시간도 그대로 멈춰버리거든요.
그러면, 고통을 받았던 그 순간에서 사람은 영원히 멈춰 서게 됩니다.
그 상처를 끊임없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앞을 향해 걸어 나가야 합니다.
과거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입니다.
그 미래는 걸어가는 사람만이 맞이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는 속도는 이전보다 못할지라도, 한 발자국씩이라도 걸어가야만이 새로운 길에서 새로운 현실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나간 시간에 비례해 성장해야 할 것이다. 감정에 치우쳤던 지난날에 비해 좀 더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다. 시간은 어제에서 오늘처럼, 또 오늘에서 내일로 흘러갈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할 필요는 없다.
위의 문장과 비슷한 맥락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똑똑해지고, 지혜를 얻어야만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과거의 실수와 실패에서 배우고 성장하여 미래에는 더 좋은 방향으로 인생을 이끌어감으로써, 행복이라는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보다는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감정은 한순간의 폭발이지만, 이성은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지혜의 눈길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감정폭발을 너무 후회하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은 결국 흘러가버리고 그 폭발의 뜨거움마저도 식어갈 테니까요.
그러니 지나간 시간에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기 위한 미소를 짓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간간이 행복해지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행복은 어디에나 있는 거니깐 놓쳐버린 것처럼 조급해 말고 하고 싶은 걸 계속하면 된다
예전에는 '꿈'이 있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고, 꿈이 없으면 인생에 큰일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꿈이 없어도 살아갈 만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죠.
이처럼, 행복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항상 행복해야 할까요? 항상 기분이 좋고 모든 일들이 잘 풀려야 할까요?
그런 사람들도 극소수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닐 것입니다.
행복은 대문을 정중하게 두드리고 들어오는 손님이 아니라, 갑자기 집으로 들어와서 나를 툭 치고 가는 도둑에 가까운 존재거든요.
행복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뒤로 와서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다시 훌러덩 가버리는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다시 집 밖을 나가 있는 게 아니라 집안의 어딘가에 숨어 있습니다. 다시 또 우리 어깨를 두드려줄 준비를 하면서 말이죠.
그러니, 행복은 구태여 좇기보다는 행복해질 수 있는 여러 미덕들을 함양하는 게 더 행복에 가까워지는 지름길이 아닐까요? 건강하기 위해 잘 차려먹고, 나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 주변 사람들을 챙겨주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샌가 행복은 내 등을 밀어주고 있을 것입니다.
2025년 30살이 되어 버린 제가, 20대 초반에 읽었었던 만화 <길에서 만나다>
그 당시에는 그저 예쁜 그림체와 서정적인 문장의 맛만 느꼈다면, 지금은 이제 문장의 의미까지 받아들이고 나름의 해석까지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20대 초반의 강렬하고도 풋풋한 감수성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만큼 나름의 지혜가 생긴 30대.
이 30대의 길에서, 저는 제가 원하는 인생의 가치들과 꿈을 이루기 위해 부던하게 걸어가려 합니다.
산책을 좋아하시고, 감성적이고 공감적인 글귀와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무조건 추천드리는 만화
<길에서 만나다> 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