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서 한참 학교 문을 다 닫고, 온라인 수업조차 하나도 없었던 약 2년 반...
나에게 두 번째 인생의 고비가 다가왔었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도 못 했었던 전 세계의 어려움이었듯,
나에게도 큰 아픔과 고통, 시련이 다가왔었고,
결국 그것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것 같은 번아웃이 찾아왔다.
그때는 그것이 번아웃인 줄 몰랐다.
2년 반동안, 독일의 사정은 너무도 좋지 않았다. 다른 모든 것이 돌아가지 않았지만, 제일 문제였던 것은 학교이다.
막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던 작은 아들, 초등학교 졸업 하고 막 5학년에 들어갔던 큰아들, 둘 다 새로운 학교에 입학한 지 4개월 만에 학교 문을 닫고, 그 어떤 온라인 수업도 이뤄지지 않길 2년 반...
어떤 누가 상상을 했겠으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모든 집은 모든 과목을 집에서 다 가르쳐야 했으며, 만약 집에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은 다 유급대상이었다.
나는 점점 아파져 갔다.
정말 너무 아팠다.
처음에는 잠을 잘 못 잤고, 24시간 집안일에 지쳐 온몸이 아팠으며, 입맛이 없어졌고, 결국 먹지를 못하고,
170cm의 키에, 45킬로 미만으로 살이 빠지면서, 정말 하루를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아침, 점심, 저녁, 밤의 구분이 없었고,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정말 너무 많이 울었다.
한국에 가고 싶었다. 감옥이 따로 없었다. 집에서 나갈 수도 없었고, 산책을 나가는 것조차도 어느 순간 제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집 밖을 나가는 순간, 독일인들을 만나서 인사를 하게 되고, 그럼 그 순간 독일어를 해야 하고... 나는 정말 하고 싶지가 않았다.
한국의 누군가와 통화나 문자를 할 때면,
"거긴 상상 초월로 힘들구나, 어떻게.. 그래도 힘내"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 거기 가서 널 도울 수도 없잖아"
"거긴 왜 그래? 어떻게 사람이 살아?"
라는 힘이 전혀 되지 않는 말이 들리고, 그리고 나는 화가 났다. 그럼 나에게 어떤 위로를 했겠는가... 위로의 말 말고는 뭘 도와주고, 여기 없는데 나를 어떻게 이해를 했겠나.. 싶다가도, 그냥 화가 났다.
나의 건강은 더 안 좋아져 갔다.
매일이 지옥이었다.
어느 날은 물도 마시지 못했다.
어느 날은 말도 못 했다.
그렇게 나는 무너졌었다.
어느 날, 30년 지기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힘내지 마! 야! 말이 돼? 한국 사람들 중에는 너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 아무리 힘들게 살아도 지금 너보다 안 힘들어!! 지금 너는 힘이 안 나는데, 네가 뭘 먹고 언제 잤다고, 없는 힘을 내려고 그래?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누워있고 싶으면 계속 누워있어.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애들한테 "엄마가 많이 아파"라고만 하고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어!
너는 네가 불쌍하지도 않아? "
듣는 내내 그렇게 펑펑 울 수가 없다.
그래, 나는 어디에 있어?
왜 나는 나를 위해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
나는 뭐 하고 있지?
이런 질문이 들기 시작했다.
기적이 찾아왔다.
2년 2개월 만에, 나는 제대로 물을 마셨고,
나는 제대로 빵을 먹었다.
뭔가를 먹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자, 큰아들이 샌드위치를 만들고 , 작은 아들이 오렌지 주스를 갈아서 갖다주었다.
그때의 아들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아들들은 내가 먹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당장은 잠을 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천천히 1시간, 2시간씩 자기 시작했다.
나도 알고 있던 것이다.
이러다가 큰일이 나겠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조금씩 회복이 되었고, 먹기도 했고, 잠도 잤고, 웃기도 했고, 아이들과 다시 장난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