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부터 예약해 놓았던
프랑크푸르트 미용실에 가는 날.
바로 오늘이었다.
아들이 실습중인 병원도 오늘은 쉬는 날이라,
네식구는 아침 일찍 서둘러서 아우토반을 달렸다.
독일에 있는 모든 미용실, 어떤 국적인 헤어디자이너가 하더라도, 가면 안 된다. 망쳐질 확률이 100%보다도 확실하다.
그러다 보니,
남자 셋 머리 자르다가 한계점을 넘어섰다.
한 마디로 너무 지쳤다.
굳이 미용실만을 위해서가 아닌,
일종의 일탈을 위한 나들이 계획인 것이다.
일부러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집을 나서는 순간, 한국인을 볼 수도, 한국말을 할 수도 없는 건 당연하고,
이제는 그러한 당연한 현실들이 우리를 더더욱 지치게 만들어, 마음뿐 아니라 더 이상 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혹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
" 그게 외국이지, 그거 싫으면 한국에 살면 되지, 왜 나가놓고 힘들대"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지"
" 그래도 어쨌거나 한국 아니잖아. 다 배부른 투정이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맞지도 않는 본인들 멋대로의 해석으로 내가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으나,
결론은,
나는 더 이상, '그럴 수 있어',라고 넘겨지지 않는다.
억울했다.
진짜 거짓말같이 모두의 반응은 이러했다.
1. 여자와는 달리 매 달 정기적으로 이발을 해주어야 하는 남자 셋, 이발하는 시간보다 뒤처리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주말의 하루를 그렇게 보내야 하는 나에게.
" 돈 아끼고 얼마나 좋아",
"그럼 네가 하지 누가 해",
"요즘 한국에서도 엄마들이 애들 이발해 주고 그래"
"어릴 때니까 괜찮아, 아무렇게나 해도 이뻐."
나에 대한 배려나 나의 모습에 대한 언급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헤어디자이너가 아니다. 상상도 못 해봤고, 익숙한 것은 당연히 아니며, 무엇보다도 너무 힘들다. 며칠을 치워도, 아무리 테이프로 떼어도, 계속 나오는 작은 머리카락들. 그 누구도, 당연하다 생각한다.
2. 그 누구도, 정말 그 누구도,
내 머리는 어떻게 하는지 묻지 않았다.
20대, 30대를 지나 40대가 되었는데....
나라고 이쁜 머리 안 하고 싶었을까.....
나라고 기분 전환 안하고 싶었을까.....
이제는, 가끔 내가 어떤 성별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분 전환 모드의 펌? 염색? 커트?
다 사치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할 수 없다.
내 머리카락은 어떤 상황인지. 뭘 원하는지, 내가 날 모르겠다.
3. 몇 년에 한 번 한국 가면, 제일 먼저 미용실에 간다.
그러면 이렇게 말한다.
"선진국이 더 낫지 않아?"
"오자마자 머리를 왜 만지러 가? 시간 아깝지 않아?"
저 정도면 오히려 고맙다.
"갑자기 멀쩡한 머리를 왜 만지러 가?"
이런 말도 들어봤다.
4. 예를 들면 이럴 때,
가위질이 서툴러 손이 크게 다쳐 밥을 하기 힘들었던 애들 어릴 때 어떤 겨울날..
시부모님과 전화 통화 끝에, 무슨 얘기하다가 다친 얘기를 했더니, 웃으시면서 그러셨다.
" 애들 키울 땐, 한국도 힘들어. 말도 못 해. 여기도 다 그렇게 엄마들이 집에서 애들 이발하고 그래. 훈장이라고 생각해. 뭐 어쩌겠어"
어머님은 한 번도 안 해보셨으면서....
어머님의 딸도 안 그러면서...
몇 년 전 어느 날.
주재원으로 오신 어느 가족을 우연히 만났고,
대화를 주고받는 도중.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원래 학생으로 온 사람들은 주재원들과의 만남을 꺼려한다. 많은 상황들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 프랑크푸트르 가면 한인 미용실 있대요.
거기 엄마들은 다 거기서 수시로 미용실 가고, 카페 가고, 모임 하고, 한국처럼 산대요. 그러니 큰 불편함이 없다는 거야. 물론 나도 들은 거지, 난 독일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그건 확실해요.
정말 이렇게 계속, 앞으로도 하면, 나중에 한이 돼요.
한 번만이라도 꼭 가봐요. 그러면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 거예요"
그때 당시, 프랑크푸르트는 처음은 아니지만,
반신반의로 다른 목적으로 가 본, 처음 접해본 한국사회.
나는 집에 가기가 싫었다.
다른 거 다 떠나서,
내가 가위를 들지 않아도 되었고,
한국말로 하였으며,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도 한국말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규칙적으로 매 달 갈 수는 없지만,
그 이후로는
상황이 맞춰진다면 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프랑크푸르트 가는 날이,
참 좋다. 이 날만 손꼽아 기다린달까.
물론 나는 머리를 만지지 않는다.
그건 아직 사치이다. 지금껏 인생의 반을 그랬듯이,
내 머리는 가만 두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너무 습관이 된 굳혀져 버린 느낌이 되었다.
남자 셋 커트만으로도,
나는 숨통이 트인다. 감사할 뿐이다!
열흘 넘게 아픔으로 고생하다가, 하루 나들이 하고 오니,
기분이 조금은 전환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