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효과 1

나는 믿는다,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

by Traum

2005년도에 독일에 와서 지금까지 매년 다이어리를 작성했다. 그러다 보니 2025년 다이어리 21개째가 시작되었다. 이 안에는 숱한 날들의 나의 모든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와 남편도 독일 생활 처음부터 약 12년, 13년까지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느꼈다. 그래봤자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지 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말도 안 되는 복잡하고 해결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익숙해지면서, 내 안에서 스스로 화를 식히지 않으면 숨을 쉬지 못할 것만 같던 날들이 가속도가 붙어서 많아지기 시작... 슬슬 수면 위로 드러나는 모든 문제들을 다시 물 안으로 넣으며,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그렇게 많은 날들을 사실과 현실을 무시한 채 살아갔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그렇듯, 우리가 겪은 수많은 날들은, 어떤 이들은 겪지 않았었을 일이겠고,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일반화가 될 수는 없다.


새로운 학교로 이직을 하고, 3주 만에 크게 아파진 나는 일주일 동안 침대에서 꼼짝을 못 했었다.

너무 모든 것이 낯설었으며, 생각보다 하루에 내가 체력적으로 힘을 쏟아야 하는 날이 많았었다.

내 몸이 견디질 못했었는지, 결국 크게 아팠었다

아프기 전 3주 동안, 나는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비록 몸은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물론 더 지내봐야 알겠지만, 나도 독일 생활이 한두 해도 아니고, 이젠 척하면 척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 기대도 없이 시작했던 시작이,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우리 반 선생님들에게 배울 것이 엄청 많겠구나... 참 든든하다... 이런 인연에 모두에게 감사하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학기가 끝나기 몇 달 전 들어갔던 그 반의 담임 A선생님은 60대로, 3명의 ADHD아이들과, 2명의 자폐장애 아이들과, 1명의 중증발달장애 아이로 구성된 반이었다. 11살의 라라는 자폐장애를 가진 아이로서, 좋아하는 책을 들고 다니고, 아무것도 말을 하지 않으며, 손톱을 계속 뜯고, 반향어는 없으나, 모든 질문에 "Nein(아니)"을 말하는 아이이다. 라라는 아침마다 약을 복용해야 하며, 그 약은 점심시간 지날 즈음 가끔 부작용이 발생한다. 나는 그때까지 딱 거기까지만 알고 있었다.


내가 출근을 다시 하던 날, 나는 쇼크로 말을 잊지 못했다. 우리 반의 한 교사가 나에게 "네가 꼭 알아야 할 일이 있어" 라며 이야기해 주었다. 그날이, 이 학교의 새로운 직원이기에 차라리 없던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갔었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까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아파서 못 갔던 그 주의 목요일의 일이다.

점심을 먹고 일은 벌어졌다.

라라는 갑자기 복도에 눕고, 바닥을 손톱으로 긁기 시작했고, 아주 크게 웃으며, 다시 일어나서 모든 교실 안의 책과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라라로 인해 무서워하고 있었기에 빨리 진정을 시켜야만 했다고 한다. 담임을 포함한 선생님을 도우려는 여러 교사들은 라라를 잡고 일으켜 세우고 말리려고 했지만, 약의 부작용으로 거칠게 된 라라는, 아무리 여러 명의 어른이 옆에서 잡고 막아도 힘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결국 담임은 라라를 엎드리게 해서 양 팔의 팔꿈치 쪽을 잡고 겨우 진정을 시켰다고 한다. 라라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그 상황이 도대체 얼마나 모두가 힘들었을지...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이렇게 간단히 적을 수 있는 이 글도, A선생님께 죄송하다...)

그 상황을 멀찌감치 보기만 했던 몇 교사들은, A선생님이 폭력을 가했다며 교장선생님한테 가서 이야기를 하고, 여러 차례 면담을 통해 결국 선생님은 그 후로 학교에서 볼 수가 없게 됐다.


A선생님은 평소에 다른 동료 교사들에게, 라라를 다른 아이들과 모든 것을 다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우리가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힘으로는 절대 라라를 막을 수 없다고 언제나 이야기했다. 그 3주 안에 나도 여러 차례 들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A선생님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라에 대해 어찌 보면 어떤 면에서는 부모보다 더 많이 객관적으로 아는 사람이 담임선생님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의 생각과 달랐던 것 같다.

교장 선생님한테 가서 말했던 약 4명의 교사들은 평상시에 A선생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었으며, 라라의 상황을 도왔던 다른 교사들마저도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약 7개월이 지난 지난주...


언제나 A선생님이, "라라는 안 가는 게 좋겠어, 라라는 힘들 거야, 안돼. 라라는 내가 데리고 있을게"라고 할 때마다, "아니, 라라도 무조건 먹어야 해, 라라도 무조건 가야 해, 라라도 무조건 다른 애들이 하는 거 다 해야 해."라고 대답하며 A선생님의 말과 반대로만 했었던, 그래서 A선생님을 힘들게 했던, 단 한 번도 라라와 함께 해보지 않았던 막 27살이 된 다른 반 교사 S선생님..


라라가 기저귀를 떼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게 한 달째, 라라에게 전혀 시간을 주고 싶지 않은 많은 교사들에게 라라가 화가 많이 났는지, 지난주 목요일... 옆에 오는 모든 어른들을 할퀴고 때리고,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S교사가 투입된다. 약 10분 후..... 울면서 나온다.

"라라가 날 할퀴었어, 피가 나, 저런 앤 줄 몰랐어, 힘이 너무 쎄, 날 밀쳐서 내가 뒤로 넘어졌어. 감당이 안돼, 저런 애라고 왜 말 안 했어?." 라며...


그 상황을 보고 있던 A선생님과 친했던 교사들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말했어. 네가 듣지 않았어. 안타깝지만, 너에게 돌아온 거야. 잘못이 없는 사람에게 잘못이라고 우기고, 약 40년의 경험을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렸던 그날을 기억하니...

선생님이 얼마나 울었으며,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넌 이제 알겠니...?'


나이에 아무 상관없이 "너"라고 불리며, 모든 사람이 동등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 언제나 긍정적인 상황만 있지 않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경험은 존중되어야 하며, 그리고 적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예의"는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

친한 외국인 동료 교사와 이야기했다. 남 험담을 하고, 험담을 하고 이런 것은 어느 곳 어느 집단이건 있기에 논란의 여지가 되지가 않는다고 하고, 우리는 이 많은 세월 동안,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과 존경이 서로 간에 지켜지고 있는 곳은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보지 못했다.


인생은 부메랑과 같다. 내가 준만큼 언젠간 반드시 돌려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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