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깊은 바닥을 찍고.

by Traum

사람들이 코로나에 대해 무뎌질 때쯤..

아이들의 학교는 아직 닫혀있었고,

많은 외국인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특히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90프로는 돌아간 듯하다.

가끔 몇 주마다 한 번씩 1시간 내외로 학교를 가면,

제정신이 아닌 작은 아들의 학교 담임교사 때문에, 학급의 모든 남자아이들은 다 아파졌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엄청 아팠고, 삶을 살아가기 힘들 지경이었다.

물 한 잔도 겨우 넘겼고, 잠을 못 잤다.

하루에 몇 시간 자는 정도가 아니라, 반년 넘게 자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른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작은 아들도 아파졌다. 그 모습에 너무 기가 막혀서, 억울하고 분통하고, 반 남자아이의 부모들과 여러 방법을 찾고 해 봤지만, 역시나 독일이다.


그때 나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한 말들은,

" 한국에서 모든 사람들이 지금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너 거기 있는 거 감사해야 해"

" 애들 학교 걱정 안 해서 좋겠다. 여기는 난리야. "

" 마스크 안 쓰고 다녀서 너무 부럽다"

" 너희는 스트레스 없어서 좋겠다 "

말도 안 되는 말들이기에 그냥 넘기면 됐었지만,

하나하나 가슴에 박힌다.


유럽이, 독일이, 코로나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뉴스는 봤나?

학교 다 닫고, 온라인 수업 일절 없이, 모든 걸 집에서 다 하고 있는데, 상상은 되려나...

마스크 없어서 못써서 다 코로나 걸리고, 약도 없고, 병원들이 다 문을 닫아서 병원도 못 가고, 이웃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가시는데... 시신 운송 차만 계속 보이고.

슈퍼에는 공급이 되어야 하는 모든 곳이 마비상태라, 어떻게든 먹어야 하는데, 쌀은 애당초 전혀 구할 수 없고, 밀가루도 더 이상 안 팔고, 게다가 나는 아프고 물도 못 넘기는 상황에 애들 식사를 매끼마다 차려야 하는 내 몸과 마음은 지금 다 찢어졌는데.

무심코 던진 저런 말들이 하나하나 내 가슴을 찢었다.


한국의 가족들도 또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많이 아팠고, 상처들로 가득한 채, 남편과 매일 밤 숨죽이며 울며 그렇게 고통스럽게 삶의 끝을 보아가며 매일 아침이 다가왔었다.

이 쯤되니 남편이 눈물을 흘렸다. 미안했다. 내가 많이 아파져서...

결론적으로 사람이 살 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한국을 가려고 마음을 먹게 된다. 그 결론까지도 어떻게 생각하고 마음먹은 건데.... 얼마나 많이 울었는데...

그동안 너무도 많은 고생으로 여태껏 버틴 게 아까워서라도 안 가고 싶었는데... 나는 움직일 수가 없이 되어버린다.

............................................................................

그런데 한국의 가족들에게 결국 또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된다...

............................................................................

그때 번뜩 정신에 들었다.


정신 차리자. 무너지지 말아야지. 나는 그들과 다르게 내가 지켜야지.


남편이 일부러 없는 휴가를 내었고,

나를 먹였고, 마시게 했고, 걷게 해 줬다.

잠은 여전히 못 자지만, 벽에 기대어 앉게 되었다.

더 이상 토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의 놀이에 미소도 띠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끝도 없는 깊고 아픈 동굴의 바닥에서 조금씩 나오게 되었다. 한참 후, 밥이 먹고 싶어졌다. 쌀도 아직 못구하는데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태리-볼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