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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보다 강한(?) 거미줄-거미 2편

by 신피질

강철보다 강한 거미줄


어제 양재천 산책길에 일부러 거미줄을 찾아보았지만, 예전처럼 거미줄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 후, 맨발 산책길 바로 옆 작은 덤불 사이에 지그재그로 가는 거미줄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 끝은 1M 정도 떨어진 나무줄기에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바람이 꽤 심하게 불고 있는데도 햇빛에 반사되어 거의 보이지 않는 한 줄로 연결된 거미 줄은 끊어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탄성이 매우 강하다.


거미줄은 대체 어떤 물질이길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는 줄로 강한 바람을 버텨낼 수 있을까?

거미줄1.png


햇살에 반짝이는 한 줄기 거미줄은 너무 가늘고 연약해 보인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거미줄은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도 더 강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에, 자연이 숨겨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거미줄의 굵기는 0.003mm로 머리카락의 1/10 정도 굵기이다. 일부 대형거미는 0.01mm 이상일 경우도 있다.


몸속의 방적공장 ― 방적돌기


거미의 배 끝에는 방적돌기(Spinneret)라 불리는 작은 기관이 있다.


거미 spinnerlet.png

( 거미의 방적돌기 Spinneret )


거기에는 수백~수천 개의 미세한 구멍, 즉 방적관이 달려 있다. 거미줄은 바로 이곳에서 뽑혀 나온다.

거미는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종류의 실을 만든다.


- 사냥용 끈끈한 실

- 거미줄의 뼈대를 이루는 강한 실

- 알을 보호하는 부드러운 실

- 이동할 때 쓰는 안전줄


마치 직물 공장에서 다양한 원단을 생산하듯, 거미는 자기 몸에서 여러 종류의 실을 자유자재로 뽑아낸다.


액체에서 고체로 ― 화학의 마술


거미줄의 주성분은 스파이스로인(spidroin)이라는 단백질이다. 거미의 몸속에서는 액체 상태로 저장되다가, 방적돌기를 통과하면서 순간적으로 고체 섬유로 변한다.


여기서 비밀은 아미노산 배열에 있다.


- 알라닌(Ala)은 규칙적인 구조를 이루며 단단한 β-시트를 형성한다.

- 글라이신(Gly)은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고무 같은 탄성을 만든다.


즉, 거미줄은 벽돌 같은 단단함과 고무 같은 유연함을 동시에 지닌 복합소재다.

그래서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더 강하면서도, 잘 늘어나 끊어지지 않는다.



거미의 지혜 ― 재활용의 기술


흥미로운 사실은, 거미가 자기 거미줄을 그냥 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낡거나 끊어진 거미줄은 다시 먹어 치워서 소화한 뒤, 새로운 단백질 원료로 재활용한다. 마치 건축가가 헌 집을 허물어 그 자재로 새 집을 짓는 셈이다.


이 덕분에 거미는 적은 자원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그물을 지을 수 있다.


거미줄은 매일 치는 거미, 며칠에 한번 치는 거미, 그리고 몇 달 이상 유지하는 거미로 나눈다.


참거미류는 밤에 곤충이 더 잘 걸리기 때문에 보통 저녁이나 밤마다 거미줄을 짓고, 아침이면 철거한다. 낮에는 빛에 반사되어 들킬 수 있고, 비바람 먼지로 손상되기 쉽기 때문이다.


큰 구조물, 터널형이나, 시트형을 만드는 거미들은 며칠에서 몇 주간 유지하며 손상된 부분만 수선한다.


창고나 방구석에서 보는 집거미류는 큰 줄망을 만들어 두고 필요하면, 그물 일부만 수리하면서 몇 달 이상을 사용하기도 한다.



현대 과학의 응용


거미줄의 비밀은 단백질에 있다. 거미가 체내에서 방출하는 실크 단백질은 분자 구조가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어 놀라운 강도와 탄성을 발휘한다.


이 신비로운 재료는 오늘날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으로 열리고 있다.


spiderman.png


우선 의료 분야에서 거미줄은 각광받는다. 생체 적합성이 뛰어나 체내에 이식해도 거부 반응이 적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분해된다.

따라서 수술용 봉합사, 인공 인대, 인공 피부 같은 생체 재료로 응용될 수 있다.


또한 거미줄 단백질을 나노 구조로 가공하면 약물을 천천히 방출하는 캡슐로 활용할 수도 있다.


산업과 기술의 영역에서도 거미줄은 매혹적인 소재다.


방탄복이나 헬멧은 기존의 철강제품 케블러보다 더 가볍고 강한 거미줄 섬유로 대체될 수 있다.

항공우주 분야에서는 초경량 구조 재료로, 또 로프와 낙하산 같은 안전 장비에도 활용될 수 있다.


최근에는 거미줄 단백질을 전도성 물질과 결합해 스마트 섬유, 나아가 웨어러블 기기의 기초 소재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과 연구소들은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스파이버(Spiber)는 합성생물학을 통해 인공거미줄 섬유를 대량으로 생산해 친환경 의류를 선보였다.


독일의 AMSilk는 인공 거미줄로 만든 스포츠웨어와 코팅 소재를 상용화하고 있다. 생분해성, 친환경, 강도, 유연성 등 천연거미줄과 유사한 특성으로 섬유 및 산업용 소재, 화장품, 의료기기 원료로 사용한다.


미국의 Kraig Biocraft는 유전자 조작 누에를 활용해 군사용 방탄 소재 개발에 나섰다.


자연의 거미줄을 직접 수확할 수는 없지만, 과학은 이미 다른 생명체 속에 그 비밀을 이식하여 새로운 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아직 넘어야 할 장벽도 많다.

대량생산의 효율성, 원가 문제, 산업 적용의 한계가 여전히 도전 과제로 남아 있다.


거미줄은 단순한 곤충의 집이 아니라, 인간이 꿈꾸는 과학적 상상력의 무대다. 언젠가 우리의 병원을, 옷장을, 우주선을 채울지도 모르는 그 얇디얇은 실은 지금도 조용히 나무 사이, 벽 틈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 속에서 인류의 미래가 반짝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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