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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마지막 편 :고독한 포식자, 보이지 않는 동맹자

by 신피질

최근 코로나 비슷한 증상으로 일주일 동안 인후통을 심하게 앓았다.


피로감이 겹쳐서 기운을 북돋아줄 듯한 청계산 이수봉 산행을 시도했다. 이수봉은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 화를 피해서, 유학자인 정여창이 2번이나 피신을 한 곳이다.


계곡물을 따라가는 데, 거미줄이 눈에 띄게 많이 보인다. 조금 큰 거미줄을 자세히 보니, 거미줄 안쪽으로 약 2센티 정도의 중간 크기의 거미가, 약간 파충류 같은 표피를 하고, 호랑나비 같은 다채로운 피부와 길고 긴 다리를 거미줄에 얹고 있었다.


약간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벌레들이 저 거미줄에 걸리면 70~80% 꼼짝없이 잡혀 거미밥이 될 것이다.


무당거미.png



사람들은 거미를 두려워한다.

어두운 구석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거나, 천장에서 조용히 내려오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섬뜩한 감정을 일으킨다.


어떤 문화에서는 불길함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졌다.

하지만, 자세하게 거미를 파악하면, 거미는 인간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곁에서 조용히 도와주는 동맹자이기도 하다.


거미는 식물을 갉아먹지 않는다. 오직 곤충만을 노린다.

모기, 파리, 나방, 초파리처럼 인간에게 성가신 해충들이 거미의 주요 먹잇감이다.


생태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전 세계 거미들이 1년 동안 잡아먹는 곤충의 양은 무려 4억 톤에 이른다고 한다. 인류가 한 해에 바다에서 끌어올리는 모든 생선의 무게와 맞먹는 규모다.


만약 거미가 없다면 곤충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우리의 삶은 훨씬 불편하고 위협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농업에서도 거미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거미 농사법.png

( 거미 농사를 위한 연구 )


논과 밭에서 해충을 잡아주며 농약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 농업에서는 천연의 해충 조절자로 불린다.


실제로 논에 사는 거미는 벼멸구나 진딧물을 잡아 벼 수확량을 지켜주고, 채소밭이나 과수원에서는 토마토와 딸기를 노리는 해충을 억제한다.

어떤 농부들은 거미가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밭에 작은 풀숲을 남겨두거나 거미줄을 칠 수 있는 지주대를 세우기도 한다.


농부가 농약을 줄일수록 거미는 다시 돌아오고, 거미가 돌아올수록 밭은 더 건강해진다. 우리가 매일 밥상에서 만나는 유기농 곡식과 채소 뒤에는 보이지 않는 거미의 공헌이 숨어 있는 셈이다.


거미의 독 또한 단순한 위협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백 종의 단백질과 펩타이드로 이루어진 거미독은 인간의 과학자들에게 일종의 황금광산과도 같다.


호주 깔때기거미의 독 성분에서는 기존 진통제보다 부작용이 적은 새로운 통증 치료제 후보 물질이 발견되었고, 아일랜드 깔때기거미에서 얻은 단백질은 뇌세포가 산소 부족으로 죽어가는 속도를 늦추어 뇌졸중 환자의 생명을 구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브라질 방황거미의 독은 혈압을 낮추는 성분을 지니고 있어 심혈관 질환 치료 연구에 응용되었으며, 일부 성분은 친환경 살충제로 개발되어 농업 현장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죽음을 부르던 독이 생명을 살리는 약으로 변신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의 숨은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거미는 언제나 유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검은과부거미나 브라질 떠돌이거미 같은 일부 종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고, 집 안에서 갑작스레 나타나면 공포와 불쾌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거미를 무서워하는 *아라크노포비아는 전 세계적으로 흔하며, 대형 거미들 중에는 곤충을 넘어 작은 새나 도마뱀까지 잡아먹는 종도 있다. (* 아라크노는 그리스어로 거미라는 뜻임)



이렇듯 거미는 두려움과 유익함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지닌 존재다.

고독한 사냥꾼으로서 어둠 속에 숨어 생태계를 지키지만, 때로는 인간에게 낯선 공포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하다.


거미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방식대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자연은 언제나 양면성을 품고 있고, 거미는 그 진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생명체다.


거미를 향한 우리의 시선은 다소 피하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미는 어둠 속에서 생존하며 동시에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숨은 조력자이기도 하다.


작은 몸으로 세계의 균형을 붙잡고, 독과 실로 자연을 새롭게 바꾸어온 생명체. 두려움과 경이 사이에서, 우리는 거미라는 존재를 통해 자연의 복합적인 얼굴을 마주한다.


거미는 오늘도 우리 곁 어딘가에서 조용히 실을 뽑으며, 두려움 너머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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