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래전부터 병으로 고통받아왔지만, 그 정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불과 백여 년 전의 일이었다.
1892년 러시아의 식물학자 이바노프스키는 담배 잎이 얼룩지는 병을 연구하다가, 세균을 걸러내는 필터를 통과해도 여전히 전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6년 뒤 네덜란드의 베이예린크는 이 정체불명의 병원체를 ‘바이러스’라 이름 붙였다.
라틴어로 독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 단어는, 이후 인류와 함께할 긴 그림자의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의 눈에 바이러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31년 전자현미경이 발명된 이후였다.
바이러스는 세포가 아니다. 그들은 DNA나 RNA 같은 유전물질이 단백질 껍질 속에 들어 있는 단순한
구조를 가진다.
세균이 세포로서 호흡하고 대사 하며 스스로 번식할 수 있는 존재라면, 바이러스는 오직 숙주 세포를 점령해 그 공장을 납치해야만 자기 복제본을 만들어낼 수 있다.
크기 또한 세균보다 훨씬 작다. 세균이 보통 1 마이크로미터 정도라면 바이러스는 수십에서 수백 나노미터에 불과하다. 광학 현미경으로는 보이지 않고, 전자의 눈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 몸속은 하나의 거대한 도시 같다.
수십조 개의 세포들이 건물처럼 빽빽하게 서 있고, 각자 자기 역할을 하며 질서를 지킨다.
심장 세포는 펌프실을 돌리고, 간세포는 정화 장치를 관리하고, 뇌 세포는 도시의 회로망을 다스린다.
그런데 이 도시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숨어든다. 그것이 바로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다.
전기 공급도, 연료도 없는 텅 빈 상자와 같다. 하지만 도시 안으로만 들어가면, 마치 주인 없는 열쇠를 손에 쥔 도둑처럼 세포의 기계실을 장악한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기침이나 말에서 나온 작은 비말 속에 수십 개 정도의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통해 들어온다.
먼저 바이러스는 세포의 문 앞에서 “가짜 열쇠”를 꺼낸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바로 그 열쇠다. 세포 표면의 수용체에 꼭 맞춰 끼워 넣으면 문이 열린다.
그 순간, 세포는 낯선 손님을 받아들이고 만다.
안으로 들어간 바이러스는 곧장 도시의 공장을 장악한다. 원래는 세포가 자기 단백질을 만들던 리보솜과 생산 라인이 이제는 바이러스의 설계도를 따라 움직인다. 기계들은 바이러스의 껍질을 만들고, 유전물질을 복제한다.
( VIRUS 구조, 세포 침투를 위한 스파이크 단백질, 복제 물 DNA or RNA)
어느새 공장 안은 수천 개의 신형 바이러스 부품들로 가득 찬다.
마지막 단계는 탈출이다. 세포라는 건물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문을 부수듯 터져버린다. 그리고 수많은 바이러스들이 쏟아져 나와 다른 세포 건물로 달려간다. 처음엔 작은 불씨였지만, 도시 전체로 번지는 불길이 된다. 이것이 감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단 몇 개만 세포 점령에 성공해도 곧 수천, 수억 개로 증식해 버린다. 실제로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의 몸에는 수천억 개의 바이러스 입자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무게로 치면 먼지 한 톨에도 못 미치지만, 그 작은 존재가 온몸을 흔드는 것이다.
코로나가 특히 인후통을 심하게 일으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목 점막 세포에 달라붙어 세포를 무너뜨리고, 우리 몸은 이를 막으려는 면역 반응으로 강한 통증과 염증을 만들어낸다.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병은 다양하다. 독감과 코로나, 감기처럼 호흡기를 공격하기도 하고, B형·C형 간
염처럼 간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광견병은 신경계를 파괴하고, 에볼라와 뎅기열은 치명적인 출혈열을 일으킨다. HIV는 아예 면역체계를 무너뜨린다. 피부에 흔한 수두나 대상포진,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되는 인유두종바이러스도 있다.
반면 세균은 결핵, 콜레라, 장티푸스, 폐렴, 파상풍, 페스트 같은 병을 일으킨다. 세균은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바이러스는 항생제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백신과 항바이러스제가 인류의 무기다.
역사에서 인류가 바이러스를 상대로 거둔 유일한 완전한 승리는 천연두였다.
치명률이 30%에 달했던 무서운 병, 그러나 변이가 거의 없고 사람만 감염시켰으며 증상이 뚜렷해 추적이 쉬웠던 천연두는 백신의 힘으로 1980년 완전히 사라졌다.
인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룬 완벽한 승리였다.
그러나 다른 바이러스들은 훨씬 더 교묘하다. 인플루엔자는 매년 옷을 갈아입듯 변이를 거듭하고, HIV는 면역을 직접 공격해 백신조차 만들지 못했다. 코로나19 역시 알파, 델타, 오미크론으로 이어지는 변이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단순히 적일 뿐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세균을 잡아먹는 박테리오파지는 슈퍼박테리아 치료의 대안으로 연구되고 있고, 바이러스 벡터 기술은 유전자 치료와 백신 개발의 핵심 도구가 되었다.
바다에서는 미생물을 파괴하며 탄소와 영양분을 순환시켜 지구 생태계를 유지한다. 인류를 괴롭히는 동시에 지구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인류의 친구라기보다는 인류의 적이다. 지구상 이름이 붙여진 만여 종이다.
바다에만, 리터당10억 개가 존재한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시베리아등 동토층에 갇혀있는 인류가 접해 보지 못한 바이러스 출몰에 대한 우려도 있다. 시베리아에서 출현한 탄저병처럼 말이다.
DNA 계통과 RNA 계통 및 다양하다. 수두나 대상 포진등이 DNA 계열이고, 변이가 심한 코로나 등이 RNA 계열이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공포이자 스승이었다.
그들은 생명과 무생명의 경계를 흔들며, 우리 몸속 면역이라는 위대한 군대를 깨닫게 했다. 천연두를 박멸한 경험은 인류에게 희망을 보여주었고, 코로나19의 변이는 우리가 끝까지 방심할 수 없음을 가르쳐 주었다.
보이지 않는 이 작은 존재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싸우며, 때로는 길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최전선에는 언제나 우리 몸속의 백혈구와 림프구,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면역의 군대가 있다.
( 우리 몸의 면역 체계인 림프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