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을 당일치기로 간다.
양재역 12번 출구 아침 7시.
잠이 짧아지고 얼굴 주름이 깊어지는 중년 이상의 등산객들이 산악회 버스를 기다린다.
이번 당일치기 산행에는 젊은 친구들은 많지 않고 단풍 구경하려는 나이 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젊은 산꾼들은 최소한 일박 이상을 할 듯하다.
나도 젊지 않지만 동네 뒷산을 벗어나 일박 이상하는 산 꾼이 되고 싶다.
산속에서 밤을 보내야 산의 정기와 잠재의식이 교류할 듯하다.
대부분 동성의 친구 두셋 혹은 혼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동일 연배 여성이 옆에 있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화서 휴게소에서 9시 30분에 정차했다.
휴게소에서 단백질을 보충하려고 국밥을 시켰다. 버스 출발 시간에 맞추려다 입천장을 댈 뻔했다.
급할 때는 국밥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국밥을 선택한 이유는 지난주 지리산 산행 시 가이드가 한 말 때문이다.
등산할 때는 단백질을 충분히 보충해야 한다. 긴 시간 산행하면 우리 몸의 근육 단백질이 빠져나가 허벅지가 가늘어진다. 그래서 산행 중에는 단백질을 충분하게 보충해야 한다.
경상도에 국립공원이 몇 안 되는데 그중 첫 번째 국립공원이 주왕산이다.
산악회는 동일한 산행을 항상 A코스 B코스로 두 가지 중 선택을 강요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두 곳 중 한 곳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A코스는 주봉, B코스는 장군봉을 간다. 가이드는 주봉을 서너 번 가서 이번에는 장군봉으로 간다고 한다.
주왕산 입구에는 사과나무가 즐비하다.
마침 사과를 수확할 시기여서 사과가 절정의 상태다.
그렇게 크지도 않은 나무가 수백 개 사과를 매달고 있어, 마치 사과가 저절로 공중에 떠있는 듯 온통 사과다. 도시인이 보기 힘든 풍경에 카메라에 손이 간다.
입구 2~3KM 전부터 차가 막혀 버스가 거북이걸음이다.
한 시간가량 지연될 듯하다.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은 몸은 편할지라도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불편을 겪게 된다.
단풍철이라 고속도로 식당 관광지 모두가 한꺼번에 몰리니 감당할 방법이 없다.
음식점과 토산물가게가 1KM 정도 늘어섰다.
천만의 인구가 사는 북한산성 입구 보다 식당이 길고 또 북적댄다.
주왕산의 기암괴석 너머 어딘가에 불로초가 있고, 그것을 찾으러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듯하다.
산을 오르기 전 배를 든든히 하려는 듯 식당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주왕산 입구 대전사 )
주왕산에서 가장 높은 주봉코스를 선택했다.
지리산과 설악산을 연달아 올라서인지 무릎이 다소 시큰거렸지만 무시하고 올라간다.
산입구에서 등산화를 벗고 배낭에 맸다.
드디어 맨발로 주왕산을 밟는다.
주봉 올라가는 맞은편 산 중턱 둘레에는 거대한 검은 바위가 수 킬로미터 옆으로 펼쳐 있다.
마치 거대한 검은 대포 알을 거꾸로 처박아 놓은 듯하고, 검은 고양이 등처럼 곡선을 한 수십 미터의 바위가 산 중턱 옆으로 길게 도열해 있다.
산신이 정상에 있는 불로초를 보호하려고 바위로 높은 철옹성을 길게 쌓은 듯하다.
( 주왕산 중턱 길게 뻗은 바위 )
산 오르는 길 주위에는 곧게 뻗어있는 금강송이 가득하다. 금강송을 보면 하늘로 솟구치는 기운이 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금강송과 참나무이다. 사실 대부분 우리나라 산의 주종이다.
영국 주재 시절 집 근처 공원에서 금강송과 영국 참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에 얼마나 감탄했던가!
봄의 따사로운 햇빛에 참나무 녹색 입이 요정처럼 춤을 추며, 금강송의 곧고 시원한 기상과 어울려 마음 깊숙한 곳에서 환희가 일어났다.
경상도의 가장 유려한 명산답게 금강송의 기운이 온 산에 가득하다.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수려한 산세와 힘찬 기상에 정신이 맑아지고 에너지의 순환이 활발하다.
허벅지에 힘이 넘치고 허리는 곧게 펴지며 가슴이 활짝 열린다.
주왕산의 산신과 내 몸이 서로 교류하는 듯 온몸이 날아갈 듯하다.
기암절벽 주왕산의 최고봉인 주봉은 지나치게 겸손하고 평범하다.
산 정상이 무척 평평하고 사방이 나무로 둘러 쌓여 시야가 없다.
마치 세상 사람들에게 지극히 높은 도는 평범함에 있다고 말하는 듯
마을의 나지막한 산의 평범한 정상과 같다.
주왕의 바위는 잘게 부서지는 암석이다.
그래서 능선길은 작고 뾰쪽하게 부서진 돌들이 많아, 맨발에 작은 고통을 준다.
고통을 잘 참으면 세포가 활성화되고 자연과 연결이 깊어지며 내면에 행복감이 인다.
정상을 내려오며 걷는 길 옆 주왕 계곡 물길은 길게 이어진다.
마치 긴 하천을 지나듯 산 중턱부터 평탄하게 연이어진다.
낙엽이 가득 덥힌 계곡물에 맨발을 담갔다. 맨발 산행을 하면 계곡물에 들어갈 때 번거롭지 않다.
찬물 샤워를 계속해서인지 물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고,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가득하다.
주왕의 계곡물이 산행의 피로를 치유한다.
물로 세례를 받듯 주왕산 계곡물을 손에 가득 담아 얼굴에 뿌렸다. 얼굴이 뽀송뽀송해진다.
계곡에는 용연폭포, 용추 폭포 등이 있다. 백두대간 명산답게 계곡도 깊고 폭포도 제법 길다.
폭포 양 옆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즐비하다.
도교의 신선이 지팡이 집고 바위 위에서 묵묵히 지켜볼 것 같이 바위의 기가 매우 세다.
백두대간의 기세가 경상북도 중심에서 용트림을 하고 솟은 듯하다.
(주왕산 계곡 및 바위 )
이렇게 기묘한 바위는 주왕산이 전국에서 손꼽힐 것이다.
화려한 단풍은 덤이다.
대전사에 오후 4시에 도착했다.
주왕산의 기묘하고 거대한 바위 기운과
단풍으로 가득한 용추 계곡물의 청명한 기운이 온몸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