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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왜 갑자기 ‘빅데이터’가 되었는가?

데이터가 세계를 다시 쓰는 방식

by 신피질

예전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단어가 이제는 일상을 지배한다. 바로 ‘빅데이터’다. 하지만 이 단어를 정확하게 정의해 보라고 하면 선뜻 말하기 어렵다. 얼마나 커야 빅(Big)인가? 왜 지금 이 시대에 갑자기 중요해졌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데이터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이 데이터를 인공지능은 어떻게 사용하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데이터가 어떻게 이 세상의 언어가 되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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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전까지 대부분의 삶은 기록되지 않았다. 카메라는 필름 혹은 디카였고, 지도는 종이였으며, 사람이 어디를 걷고 무엇을 먹고 누구를 만났는지 같은 정보는 그저 흘러갔다. 하지만 2007년 스마트폰, 특히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세상은 바뀌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은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라 일상 전체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고성능 센서 장치였다. 사진, 영상, 음성, 위치, 검색, 결제까지 모두 데이터가 되었고, 인류는 처음으로 자기 행동 대부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후 10년 사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들고 살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데이터는 ‘많아졌다’가 아니라 ‘폭발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졌다. 일상, 소비, 이동, 습관이 모두 서버에 저장되기 시작했고, 물건이 아니라 행동 자체가 데이터가 되었다. 이것이 빅데이터의 출발점이다.


데이터가 급격히 많아진 데에는 기술, 인간 행동, 사회 구조가 동시에 변한 배경이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세상을 촬영하는 수십억 개의 센서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뿐 아니라 앱을 여는 순간, 화면을 스크롤하는 순간에도 데이터를 남긴다.


이어서 클라우드가 등장하며 데이터가 머물 공간이 생겼다. 과거에는 서버를 직접 사야 했지만 이제 누구나 Amazon, Google, Microsoft의 클라우드를 이용해 무한에 가까운 저장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SNS의 확산 또한 빅데이터 시대를 가속했다. 과거에는 미디어만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이 하루 수십 개의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생산한다.

나아가 공장, 도시는 물론 자동차와 가전까지 스스로 데이터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만드는 것이 되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데이터가 많아진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 빅데이터의 핵심은 단순히 양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데이터는 양이 늘어나면서 본질 자체가 바뀌었다.


빅데이터의 첫 번째 속성은 ‘압도적인 양’(Voume)이다.

과거의 데이터는 설문, 조사, 표본 조사처럼 전체의 극히 일부만을 측정했다. 하지만 지금의 데이터는 전체를 기록한다. 전체가 기록되면 진짜 행동은 반복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패턴을 이루지만, 오류나 거짓은 패턴을 만들지 못하고 사라진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인공지능이 더 정확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속성은 데이터 생성 속도(Velocity)다.

예전에는 하루 단위, 시간 단위로 기록되던 것이 이제는 초 단위를 넘어 실시간을 지나 나노초 단위로 축적된다. 자율주행차 센서, 금융 시장의 변동, 스마트워치의 생체 정보, 산업 설비의 진동 데이터는 끊임없이 생성된다. 이 속도는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영역으로, 실시간 판단은 오직 인공지능만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세 번째 속성은 데이터의 다양성(Varity)이다. 과거 데이터는 주로 숫자였고 정형화된 형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진, 영상, 음성, 텍스트, 위치 정보, 생체 정보, 기계 신호, 유전 정보까지 모두 데이터가 된다. 데이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의 디지털 복제본이 되었다. 이러한 다양성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넓은 감각을 갖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빅데이터는 지난 20년 동안 네 번의 큰 전환을 겪었다.

첫 번째 전환은 2007년 이후 스마트폰과 클라우드의 결합이었다. 이 시기에 세상이 데이터 생성기가 되었다. 두 번째 전환은 2012년 이후 딥러닝 기술의 부활이다. 데이터가 많기만 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을 이해할 기술이 필요했고, 딥러닝은 데이터 속 패턴을 스스로 학습하는 최초의 기술이었다.

세 번째 전환은 2020년 이후의 초거대 데이터 시대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위챗처럼 세계적 플랫폼들이 수십억 명의 행동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생성했다.

네 번째 전환은 2022년 이후 GPT와 같은 초거대 언어 모델의 등장이다. 이 시기부터 인공지능은 단순히 데이터를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이해하고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단계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빅데이터는 인공지능에게 왜 그렇게 필수적일까? 인공지능은 사람이 규칙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스스로 찾아낸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반복되는 패턴은 더 강해지고, 오류나 거짓은 패턴을 만들지 못해 사라진다. 이는 대수의 법칙이자 딥러닝의 본질이다. 데이터가 10배, 100배, 1000배로 증가하면 진짜 패턴만 남는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시간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정확해지고 똑똑해진다. 인공지능의 뇌는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가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가 이 거대한 데이터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까? 현재는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으로 앞서 있다. 미국은 구글, 유튜브, 메타, 아마존, 애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인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또한 AWS, Azure, GCP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클라우드 인프라가 있다. 데이터는 결국 ‘어디에 저장되는가’에 따라 국가의 자산이 된다.


중국은 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빅데이터 강국이 되었다. 인구 14억의 거대한 단일 시장과 모바일 결제 중심의 디지털 생활 방식은 세계 최대 규모의 행동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위챗과 알리바바는 단일 플랫폼에서 국민의 이동, 결제, 커뮤니케이션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인프라와 반도체 기술을 갖추고 있고, 국민의 디지털 사용률도 매우 높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데이터를 대규모로 축적하고 활용하는 글로벌 플랫폼이 없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국내에서는 강력하지만 글로벌 데이터 경쟁에서는 규모가 부족하다. 또한 의료·금융·행정 데이터 규제가 많아 AI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 통합이 어렵다. 한국은 ‘데이터 인프라 강국이지만 데이터 생태계는 약한 국가’라는 특징을 갖는다.


결국 빅데이터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세계 자체가 변하는 과정이다. 현실의 대부분이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고, 이 디지털 신호가 인공지능의 학습 재료가 된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오류는 사라지고 진실은 패턴으로 드러난다. 이 흐름을 먼저 이해하는 국가와 기업이 인공지능 시대의 주도권을 잡는다. 다음 시대의 경쟁은 더 이상 기술 그 자체의 싸움이 아니라, 데이터를 누가 더 많이, 더 깊게, 더 넓게 다룰 수 있는가의 싸움이 될 것이다.


빅데이터가 많아질수록 현실세계는 빅데이타화 된다. 인간이 현실세계에서 생존하듯이, 빅데이터가 현실세계를 표현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빅데이터 속에서 현실세계를 살아간다.

한 인간의 한정된 지식은 생존 차원이지만, 인공지능은 전 세계의 모든 인류의 현실을 모두 반영한 초인류 지능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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