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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에이전트 시대, 인간의 시간을 다시 설계하다

by 신피질

AI를 처음 접했을 때 우리는 질문에 답하는 챗봇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의 인공지능은 그 단계를 훌쩍 넘어섰다. 단순히 대답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일을 수행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지능형 조력자, 바로 AI 에이전트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 기술은 이미 법률, 의료, 회계, 제조, 고객지원, 행정 등 다양한 산업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며 우리의 일과 삶의 구조를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바꾸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질문에 답하는 AI가 아니다. 일을 이해하고 계획하며 필요한 도구를 호출해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는, 말 그대로 스스로 움직이는 ‘디지털 노동자’에 가깝다. 어떤 문제를 마주하면 정보를 모으고,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계획을 수정하며,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이루어진다. 반복 작업을 맡기기에 이상적인 존재가 바로 AI 에이전트다.


이런 능력이 가능해진 이유는 파운데이션 모델이라는 거대한 지능 덕분이다. GPT, Claude, Gemini 같은 모델은 방대한 지식과 추론 능력을 갖춘 두뇌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에이전트가 이 두뇌를 직접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API라는 연결 통로를 통해 두뇌의 지능을 ‘빌려 쓰는’ 방식이다. 에이전트는 파운데이션 모델의 사고 능력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외부 도구와 시스템을 호출해 실제 행동을 수행한다. 두뇌와 손발을 분리해 결합한 셈이다.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익의 핵심은 바로 API 사용량이다. 에이전트가 확산되면 API 호출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나의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수십 번, 많게는 수백 번의 모델 호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은 엔진을 제공하고, 에이전트 기업은 그 엔진을 활용해 다양한 산업별 솔루션을 만든다. 에이전트가 성장할수록 파운데이션 모델의 매출은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구조다.


과금 방식도 흥미롭다. 많은 에이전트는 월 구독제를 채택하지만, 가장 중요한 방식은 사용량 기반 과금이다. 얼마나 많은 토큰을 사용했는지, 얼마나 많은 작업을 수행했는지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 구조다. 기업은 필요한 만큼만 쓰고,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은 사용량이 증가할수록 더 많은 수익을 얻는다. 이 구조는 양쪽 모두에게 효율적인 방식이다.


이 기술이 불러오는 고용 시장 변화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신입 변호사가 하던 판례 조사 업무가 크게 줄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진료 기록을 자동으로 정리하는 에이전트가 등장해 의료보조 인력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회계와 세무 분야에서는 수백 쪽의 문서를 읽어 오류를 잡아내고 초안을 작성하는 기능이 일반화되고 있다. 고객센터에서는 하루 종일 들어오는 문의의 상당 부분을 에이전트가 처리한다. 제조업에서는 설계 초안 작성과 품질 검사, 문서 관리 같은 반복 업무가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한 일자리 감소로만 볼 필요는 없다.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업무가 줄어들수록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일의 방식을 재구성하는 능력이다. AI 에이전트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산성 차이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AI 에이전트는 기업만의 도구가 아니다. 개인에게도 강력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보고서 초안 작성, 자료 조사, 일정 정리, 이메일 답변, 개인 프로젝트 관리 같은 일상적 업무를 자연스럽게 맡길 수 있다. 과거에는 시간을 쏟아야 했던 일들이 이제는 몇 분 안에 정리된다. 에이전트는 우리의 시간을 회복시켜 주는 조용한 기술이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변화의 입구에 서 있다. AI 에이전트는 산업 구조를 바꾸고 있고, 파운데이션 모델의 비즈니스 구조를 재편하며, 개인의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이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이다.


AI 에이전트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기술이다.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나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넓게 상상하며, 더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AI 에이전트를 삶 속으로 초대하는 순간, 우리의 시간은 전혀 다른 의미로 흐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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