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감기가 정체를 나타냈다. 머리 아프고 입천장에 바이러스가 붙고, 코가 꽉 막혔다.
밤새 꾼 꿈이 아직도 생생하다. 암에 걸린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어제 오후 3시 반, 12코스 종점 용수포구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하던 중 올레 길을 도는 단체를 만났고, 그들이 다시 출발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 덩달아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사고 뒤따라 용수포구를 떠났다. 숙소가 걱정되긴 했지만 중간에 게스트하우스나 펜션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마을 중간쯤 지났을 때, 올레 길 맞을 편에서 오는 청년에게 13코스 중간에 숙소가 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젖는다. 13코스는 중간에 식당이나 숙소가 전혀 없고 아주 지루한 코스라고 한다.
걱정스러웠지만 조금 더 가서 숙소가 있으면 머물 작정으로 30분을 더 걸었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 게스트 하우스가 있어 전화를 했더니,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한다. 코스 중간에 숙소가 있는지 물었더니, 더 이상 없고 13코스 종점에 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용수 포구로 돌아왔다. 용수포구 커피숍에서 소개를 받아 근처 펜션에 숙소를 잡았다.
텐트가 없이 도보 여행을 할 경우, 오후 3시가 넘어가면 숙소가 풀어내야할 긴급한 숙제가 된다.
포구 근처 김대건 안드레아 제주 표착 기념관에 들렀다. 우리나라 최초 신부인 김대건 신부는 16세에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길에 풍랑을 만나, 용수포구 바로 앞에 있는 차귀도에 표착했다.
당시 타고 온 배가 라파엘로로 복원을 추진한다고 한다. 16세면 고1정도 나이 인데 지금으로 보면 조기 유학생이다.
김대건은 25세인 1846년 새남터에서 참수당했다. 짧은 삶이지만, 한국 천주교는 김대건 안드레아를 한국 최대 성인으로 모신다.
한국은 천주교가 외부 지원 없이 자생으로 발생한 유일한 국가이며, 신해년 신유년 기해년 병오년 병인년에 걸쳐 총 5차례 국가적 탄압이 발생해 약 10,000여 명이 희생됐다. 이 과정에서 천주교 신자에게 극심한 고문이 가해졌다.
기념관 1층에는 각종 고문도구가 전시되어 있다.
중형자에게 큰 칼을 목에 씌우는데, 고개를 움직이지 못하고 결국에는 목뼈가 휘어질 정도로 무거워 보인다. 나같으면 하루도 견디기 힘들 것 같다.
곤장은 엉덩이에 장형을 맞으면 살이 찢길 정도로 크고 무거워 보인다. 엉덩이에 맞으면 엉덩이 살이 남아나지 않을 듯 할정도로 위협적으로 보인다.
밤새 몸살기운으로 뒤척이다 아침 7시 45분 펜션을 나왔다.
중수 포구는 식당이 없어, 어제 산 삼각 김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돌아왔던 길을 다시 간다. 간밤에 아파서 끙끙대며 잠을 자도, 아침은 늘 신선하고 기운이 솟는다.
잠이 정신과 육체 회복에는 최고다.
5월 중순은 도보 여행하기에 최적의 계절이다.
아침 해는 농촌 마을과 밭을 은은하게 보듬고 새들도 아침 하늘을 즐기며 가볍게 속삭인다. 시원한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와 발걸음이 가볍다.
천천히 걸으면 빨강 노랑 자주 녹색 등 다양한 원색이 두드러지게 시야에 밀려와 벅찬 생명 화폭을 연출한다. 이때 우리 의식은 신선하게 자극을 받고 깨어난다.
돌담 옆에 노란 금잔화가 만발했다.
용수 저수지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쉰다. 방금 전 오른쪽 가슴 부위에 약간의 통증이 왔다. 한 번도 이런 증세가 없었는데 혼자 가다 심장마비 오면 어쩌지 하는 우려가 생긴다.
무거운 배낭을 계속 지니 근육 쪽에 무리가 올 수 있었겠다.
평생 육체를 움직여 고된 노동을 한 강건한 아버지도 노년에 어지러움으로 여러 번 병원신세를 졌다.
뇌졸중이 악화되어 반신을 못쓰는 어머니를 20년 넘게 보살피다 당신이 먼저 전립선암에 걸리셨고, 암이 뼛속까지 전이되어 돌아가셨다.
임종 전 아버지를 광주 가톨릭 호스피스센터로 옮길 때, 요양원 입구에서 휠체어에 홀로 남아 있는 어머니에게 무언의 작별을 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난다.
나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사랑해 주신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신 후 3년 병고로 더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나는 어머니께 한 번도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말을 못 했다. 아버지 언제 오시냐고, 어머니가 매번 물을 때마다, 매번 병원에서 곧 오신다고 했다. 어머니는 단기 망각 치매가 있으셨는 데, 나중에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으셨다.
착하고 열심히 사시던 그분들의 마지막은 너무 험난 하셨다.
도대체 하늘의 정의는 무엇인가?
제주 올레 길은 낭만의 도보 여행이 아니다.
전국의 대부분 둘레길은 산길이지만 제주 올레 길은 십중팔구 농촌을 지난다. 농민과 작업자 기계소리가 섞여 생산 활동을 하는 삶의 현장이다.
가끔씩 나타나는 높은 사각형 구조물이 무엇인지 궁금해져, 구조물 계단을 타고 올라가 보니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물 저수시설일 듯싶다. 강이 없고 호수가 많지 않은 제주 농촌에서는 농사하려면 물 저수 시설이 필수일 것이다.
용수 저수지는 1958년 이 지역 인근 논에 물을 대는 용도로 제방을 쌓아 만들었다.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본 저수지 중에 가장 큰 규모이다.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이 일고 깨끗해 보인다. 누군가 앞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저수지 둑에 잔디가 곱게 자랐다. 잔디를 밟는 발의 감촉이 좋다.
수탉이 우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마을 옆 수풀에서 노란 개가 갑자기 짖는 바람에 놀랜다. 이젠 시멘트 길도 맨발로 걷는다. 시멘트 길이 너무 많아 매번 신발을 신고 벗었다가 배낭에 메는 것도 귀찮다.
돌 담 아래서 두꺼운 잎에 아담한 진노랑색 꽃이 눈에 띄어 찾아보니 애기 해바라기이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며 지속 고개를 돌리는데 이 꽃은 고개를 뻣뻣하게 하늘 정중앙으로 쳐들었고, 생김새도 해바라기를 닮지 않았다. 누가 이름을 지었을까?
연 잎이 가득한 아담한 연못 벤치 앞에 앉아 있다. 흰색의 연꽃도 십여 개가 보인다.
햇빛이 연 잎에 반짝이고, 멀리서 종달새 지저귄다.
맨발로 자연을 걸은 지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구룡산 대모산 등을 수없이 맨발로 다녔다.
지리산, 설악산 등도 몇 차례 맨발로 다녔다.
이젠 산에 가면 무조건 맨발이다. 겨울에 온도가 영상일 경우 맨발로 산행하다 중턱 이상에서 눈과 얼음 위를 걸은 후 동상에 걸린 적도 있다.
맨발로 산행하면 발바닥이 느끼는 다양한 촉각을 의식한다. 땅에는 무수히 많은 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발바닥을 통하여 이들의 세계를 느낀다.
부드러운 잔디나, 황토 길, 소나무 잎이나 낙엽이 쌓인 길, 화강암 등 표면이 부드러운 돌길을 지날 때 발바닥에서 밀려오는 촉각의 신선함으로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천천히 걸으면서 다양하게 펼쳐지는 자연도 관찰한다.
명상과 같은 효과이다.
뾰쪽한 돌이나 나무뿌리를 일부러 밟아, 마사지받을 때 아픔과 상쾌함이 동시에 일어나게 하기도 한다.
바위나 자갈 땅 위로 나온 나무뿌리 등은 발을 압박하여 마사지 효과도 있을 것이다.
신발에 있는 쿠션 기능이 없어, 맨발로 땅을 디디면 관절에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맨발로 디딜 때 즉시 다가오는 예민한 촉각으로 바닥의 기울기나, 지면의 상태를 세포가 그대로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 인체는 자동적으로 발가락 5개를 모두 활용하여, 부드럽게 착지한다.
마치 고양이가 빠르게 착지하지만 깃털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과 같다. 돌과 바위가 많은 높은 산에 오르내릴 때 발가락을 모두 활용하여, 사뿐사뿐 리듬을 타면서 움직인다. 인체의 모든 쿠션이 자동 반응한다.
발이 매우 싫어하는 것은 표면이 거친 인공으로 만들어진 시멘트 아스팔트 길이다. 표면이 거칠어 발바닥이 긁힐 염려가 있다. 내 발바닥에 굳은살이 있지 않는지 궁금해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굳은살이 있으면 신경에 자극이 가서 아파서 걸을 수 없다.
부드러움이 강한 자극을 견딜 수 있다. 부드러운 호흡과 유연한 움직임이 삶의 필수요소다.
잎사귀 끝이 가시처럼 뾰쪽한 나무가 눈에 띈다. 한 잎 따서 만져보니 가시가 뾰쪽하다. 나뭇잎 창이다. 이름이 호랑가시나무이다. 우리 조상들의 호랑이 공포가 반영된 듯하다.
거의 한 시간 이상을 맨발로 아스팔트 길을 걸었다. 제주도 농촌을 봐도 대한민국은 선진국임이 확실하다. 중간 산간 깊숙하게 들어온 좁은 농로도 모두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 도로이다. 맨발 걷기 열풍으로 도시 지자체들이 맨발 황토 길을 조성하지만, 이곳 삶의 현장의 농부들에게는 어처구니없고 코웃음 칠 일이다.
길 표말은 고목나무 숲길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고목나무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작은 규모 곶자왈이다. 부드러운 흙과 우거진 나무 그늘로 차가워진 용암 돌멩이가 발바닥을 시원하게 한다.
숲은 바람을 만드나 보다. 나무 위에서 거센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듬성듬성 키 큰 소나무가 이파리를 떨구며 비명을 지른다.
제주도 솔 잎은 굵고 길다. 바닥에 덮여있는 많은 솔잎과 솔 꽃이 거친 돌을 부드럽게 만든다. 솔 잎은 긴 바늘 같고, 꽃은 작은 애벌레 같다. 발바닥은 이들을 좋아한다.
벤치에 앉아 쉬다가 자주 본 나무가 맞은편에 있다. 녹색의 잎인데 새순은 적갈색이다. 제주도는 곳곳이 이 나무다. 네이버에 물어보니 후박나무다. 줄기는 한약 거담제로 쓰이고 염분에 강해 제주도 및 남해안에서 많이 자란다.
한경마을의 아홉굿(nine good) 연못을 지나 전망대 앞, 동그랗게 줄지어 놓은 의자에 앉았다. 과거 제주인, 즉 탐라인 들은 뻥이 세다.
제주도를 만든 여신 할망이 제주도를 만들때 너무 힘들어 흘린 땀이 이곳 연못이 되었다고 한다. 산방산 전설의 뻥과 비슷하다.
거친 용암 돌길을 지났다. 잣나무 숲길 800미터라 적혀 있어, 맨발 산책 최고 코스인 오대산 전나무 길을 기대했다. 하지만, 전나무는 없고 돌담 옆으로 측백나무 울타리만 있다. 제주는 측백을 잣이라 하나? 좁은 길에 흙은 보이지 않고 거친 돌이 전부다. 살얼음을 건너듯 한 발 한 발 걸어도 뾰쪽한 돌 모서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13코스의 말미는 저지 오름이다. 숲은 높은 소나무, 후박나무가 푸르게 우거져 있어, 청량한 기운을 준다. 오름 분화구 둘레가 800미터인데 깊숙하게 들어가 있고 나무가 우거져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오름 정상 전망대 오르기 전 오름에 대한 안내판을 보려고 접근하다 맨발바닥에 물컹한 느낌이 있어 얼른 발을 들어 올렸는데, 검 회색 빛깔의 작은 뱀이 발 밑에서 빠져나가 잡풀로 사라졌다.
머리털이 쭈빗거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달려들어 물지 않은 걸로 보아 독사는 아닌 듯하다.
저도 엄청 놀랬을 것이다.
이곳 저지 오름 전망대는 근처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모든 전망이 완벽하게 보인다. 동쪽으로 산방산이 보이고 지나왔던 모슬봉, 평지에 불쑥불쑥 튀어나온 여러 개의 오름도 보인다. 한라산은 아직 희미하게 형체만 있고 저 멀리 아득하다.
드디어 13코스 종점인 저지 예술마을 올레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의 도움으로 펜션을 예약했다. 저지 예술마을은 상대적으로 크다. 숙박시설도 많고 식당도 많다. 갈비탕을 시켜서 국물까지 다 마셨다.
드디어 올레 센터에서 파는 양말을 샀다. 7년 전 사서 신었는데, 내가 신어본 양말 중 최고의 품질이다. 센터 직원에게 올레 길을 맨발로 걷는다고 하니 놀랜다.
센터 직원에 따르면, 대부분 숙소를 한 두 군데 정하고, 가볍게 코스를 완주한 후 숙소 및 다음 올레 길 이동은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탄다고 한다. 또 올레 길 센터에서 주선해서 여러 명이 함께 걷는다고 한다.
나는 올레 길 내내 짐을 지고 이동하고, 혼자 다닌다. 또 아직은 혼자이고 싶다. 천천히 걸으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떠오른 생각을 스마트폰에 기록한다. 오늘 하루 걷는 동안 딱 한마디 했다. 잠시 쉬고 있는데 건장하게 생긴 백인 남성이 매우 빠르게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지날 때 무심결에 헬로 hello라고 답변한 게 전부다. 오늘 하루 사용한 말 백 프로가 영어다.
그는 마치 로마 보병처럼 빠르게 이동했다. 하루에 두 코스 이상 이동하겠다. 로마 보병이 30~45kg의 전투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 동안 평균 30~40킬로 행군을 한다고 한다. 특히 갑옷 및 대형 방패가 각각 10kg이다. 도착하면 숙영지와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출발 시에는 구축한 것을 해체한다.
나는 5kg 배낭을 지고 하루 20킬로 걷는다. 하지만, 나에게 올레 길 걷기는 힐링과 사색 그리고 명상이다. 과장되게 말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베트남 출신 탁닛한 스님의 걷기 명상과 같다. 천천히 자연을 관찰하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바라보는 성찰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