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포 공동묘지, 정난주 마리아 묘지, 신평곶자왈 등 2025.5.12
11코스 마치고 종점인 무릉외갓집 카페에 앉아 있다. 햇빛은 밭과 비닐하우스를 덥힌다. 힘들게 농로를 걷다가, 카페의 재즈 음악, 부드러운 커피와 함께 하니, 평화와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아침 7시 30분 하모리 체육공원을 출발해서 오후 2시 50분에 도착했다. 7시간 조금 넘게 걸었다.
더 걸을 수 있으나 중간에 숙소가 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맨발로 거친 돌길을 많이 걸어서 발바닥에 휴식이 필요하다. 좀 이른 시간이지만 더 이상 걷지 않고 오늘은 이곳 카페에서 한적한 여유를 즐기며 하루를 정리한다.
오늘 새벽 5시 명상 및 샤워 후, 호텔 인근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돼지고기가 넉넉하게 든 국밥을 먹고 출발했다. 이번 여행 목표 중 하나는 잘 먹고, 잘 자며, 천천히 걷는 것과 몸무게 65kg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나이 먹고 살 빠지면 궁해 보인다는 마누라의 지적 사항이다. 아내는 나이 들어 보이면 안 된다며 살 빠지는 걸 무척 경계한다.
상쾌한 공기 덕분에 기운이 절로 솟는다. 자유 여행 기분을 내려고 반바지를 입고 나서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이 기분이 올레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야”.
하모리 공원 시작점에 오좌수 의거비가 있다. 고종 28년에 일본 해적이 마을 여인을 겁탈하려 하자 마을 장정 5명이 목숨을 걸고 이들을 물리쳤다.
그 후 조정에서 이 공로를 인정하여 좌수 벼슬을 내린 것을 기념한 비석이다. 좌수란 지금의 해군 연대장 급이니, 큰 벼슬을 하사한 것이다.
다양한 야생화가 하모해안가에 즐비하다. 이젠 인공 지능이 있어, 풀과 꽃과 나무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다. 네이버 스마트 렌즈와 ChatGPT를 활용하여 꽃 이름을 찾는다. 새로운 꽃 이름과 속성을 알아가며 꽃의 싱그러움과 다양함에 흠뻑 젖는다.
향기가 강렬한 찔레꽃,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고수는 청초한데, 아쉽게 빈데 냄새가 난다고… 절에서는 빈대꽃이라고 한다. 빈대가 사라진 지 오래되어 꽃에서 빈데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다.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아로니아, 돈복을 준다는 돈나무 꽃 등 마치 식물학자가 된 듯, 보고 조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낯선 곳에 오면 풀 나무 꽃 자연과 역사와 문화 등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천천히 걸으며 관찰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면, 그것들이 가까이 다가와서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수술의 수, 암술과 수술의 상대적 크기, 꽃잎의 형태, 이파리의 색깔 및 배열이 자세히 보이고, 각각의 다양함과 기묘함에 깜짝 놀라게 된다.
끝없는 대양에 직면에 있는 하모리 해안가에서 바다를 보면 저 멀리 수평선이 아련하다. 파도 소리는 낮고 깊은 울림으로 피부를 타고 심장 깊숙하게 들어간 후, 전신을 휘감는다.
제주도는 상대적으로 절이 많은 듯하다. 절의 구조도 육지의 절과 다르다. 육지의 절이 개방적이라면, 이곳의 절은 약간 폐쇄적 분위기가 있다. 담장도 있고, 대웅전도 대부분 여러 개의 문이 아닌 막힌 벽이다. 그래도 절이 교회보다 상대적으로 자주 눈에 띈다. 이곳 서산사도 육지의 절과는 다른 구조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모슬봉 오름은 온통 묘지이다. 작은 가족 묘지, 공동묘지 등 다양한 형태의 묘지가 산 중턱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묘지로 가득한 이곳은, 말 그대로 죽은 자들의 땅이다. 후손들의 세력에 따라 묘를 꾸민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이곳 제주 남부는 전반적으로 산 자가 죽은 자를 잘 대접하는 듯하다.
제주에서 묘지를 산이라고 한다. 그 산들이 산을 휘감는다. 심지어는 밭 한가운데도 버젓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그만 밭인데 절반이 묘지인 경우도 있다.
묘지를 보니 또 어머니 생각이 난다. 나이 들어 혼자 걸어 보니, 자식 걱정 보다 부모 생각이 자주 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자꾸 눈물이 난다. 돌아가시기 수년 전 화장이 싫다고 하셨던 어머니 원을 들어드리지 못했다. 어머니를 화장해서 어머니 보다 3년 전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가 있는 이천국립호국원에 모셨다.
그래도 땅 한 평 못 해 드린 아쉬움이 있다.
소중한 땅을 조상에게 기꺼이 헌납한 제주 사람들의 삶을 추측해 본다.
제주도 배경인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아빠 양관식이 전 가족의 생명줄인 고깃배를 팔아, 딸의 일본 유학자금을 대준다. 가족애가 남다른 곳이 제주도 사람들일 듯싶다.
모슬봉을 오르는 흙길에서 맨발로 걸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잔디와 풀의 부드러운 느낌이 발바닥 피부를 타고 들어와 신선하다.
어제 시멘트 길을 오래 걸은 뒤 발바닥에 통증이 있어 물집이 잡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신선하고 부드러운 흙과 잔디로 피부가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농민의 섬 제주-마늘밭
제주는 역시 농민의 섬이다. 인구, 재물, 편의 시설은 대부분 도심지와 항구에 있을지라도 땅 면적으로 따지면 도시는 점이고 농촌은 면이다.
모슬포 일대는 마늘 밭 천지다.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마늘을 뽑아, 밭에 말리고 있거나, 잡초를 뽑는 농부들이 더러 보인다.
귤 재배지도 많지만 보리, 마늘, 감자 등 농작물 재배지가 더 많다.
황금물결치는 보리가 넓게 펼쳐지고, 땅에 납작 엎드린 채 진한 노란색 꽂을 가득 피운 호박, 앙증맞은 흰 꽃잎과 노란색 수술이 가득한 감자 밭도 있고, 보기 드문 하얀 메밀꽃도 군데군데 보인다.
제주도 중심부에 한라산이 먼저 강력하게 터를 잡고 들어선 후, 화산 활동으로 곳곳에 오름이 생겨, 농토가 없을 듯해도, 걷다 보니 밭들이 한없이 많다. 사이사이 구불구불 돌담 경계로 수없이 많은 밭이 있다. 그 모든 구역마다 소유주가 있다. 땅 임자가 있다.
밭을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스친다. 아련한 감정이 눈 코 가슴에서 인다. 농민으로 평생 살았고, 끝내 땅 임자가 되지 못했다. 그 고생과 한이 나에게 아직 남아 있다.
그들은 부지런했고 선량했으며 억척이었다. 공동체인 가족과 문중에 헌신했으며, 자신들의 삶을 한치의 타협도 없이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려고 평생 혼신을 다했다.
농민인 내 아버지, 어머니 능력
지금 생각하면 불가능했을 그 모든 일을 어떻게 배웠고 또 그것을 잘할 수 있었을까? 또 긴 세월 흐트러짐 없이 삶을 꾸려갔을까? 아버지는 평생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담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능력을 몇 가지 적어 본다.
산에서 얇고 넓게 바위를 깨서 짊어지고 내려와 동네 사람이나 인근 동네 집 온돌 구들장 작업, 집 수선, 담장 쌓기, 우물 파기, 보리 및 벼, 감자 고구마 포함 모든 농작물 재배, 담배 등 특용 작물 재배, 야산 개척하여 참외 수박 재배, 소 돼지 염소 토끼 개 가축 키우기, 쟁기질, 경운기 운전, 쌀 탈곡 등 추수, 아들 딸 산부인과 역할, 동네 환자 주사 놓기, 기계 수리, 쌀 한 가마니 지고 옮기기, 칫간(화장실) 분뇨 치우기…
나에게는 아버지의 일 머리 DNA가 없고, 어머니 소심함만 있는 듯하다.
이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아버지는 당신의 부모인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평생 모셨고, 방 두 개인 초가집에서 두 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병간호, 임종 및 장례를 비좁은 방에서 해냈다.
산 중턱을 개간한 작은 밭 몇 평과 소 돼지 각 한 마리로 7남매 대부분을 대학 보내고 부모를 끝까지 봉양했다.
식구들을 단 한 끼도 굶게 한 적 없고, 자식들 육성회비(매월 학교에 내는 돈)를 밀리게 한 적도 없었다.
아버지 옆에서 묵묵히 농사 및 부엌일을 한 어머니의 능력은 어떤가?
길쌈하기, 수제 다림질, 두부 만들기, 비누 제조, 막걸리 담기, 메주 담고 간장 고추장 만들기, 식초 등 각종 양념 제작, 모든 종류의 제사 음식, 떡 전 및 엿과 과자 만들기, 모내기 등 각종 농사일, 가축 키우기, 한겨울에 동네 냇가에 가서 얼음 깨고 맨손으로 빨래하기, 수박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사십 리 걸어서 팔고 오기, 아침에 아들 딸 도시락 3개 싸기 등등
내 기억으로는 두 분이 거짓말하거나, 이웃을 비방한 적이 없다. 마을과 문중의 잡다한 대소사일을 무던히도 많이 하셨고, 그 결과 문중 논 두 마지기를 소작하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초등학교 때 딱 한번, 어머니에게 단 한 번도 손지검이나 매를 맞아 본 적이 없다.
진정한 능력자들 아닌가?
제주의 묘지를 보면서 죽음이 삶에 있음을 느낀다.
11코스 중간에 정난주 마리아 성지가 있다. 정난주 마리아는 목민심서 저자 다산 정약용 조카이고 흑산도에 유배 가서 자산어보를 남긴 정약전 딸이다.
삼 형제 중 중간인 정약종은 신유박해 때 서소문에서 참수되고,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 갔다.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 위로 올라가면 산 중턱에서 정약용이 흑산도에 유배된 형님을 그리워하며 바라봤다는 곳에 세워진 정자가 있다.
정난주는 남편 황사영의 연좌로 제주도에 유배되어 생을 마감했다. 황사영 백서 사건은 북경에 있는 프랑스 주교에게 조선 정부의 천주교 탄압을 알리고, 프랑스 함대로 조선 정부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서신을 보내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도에 귀향 와서 죽었다. 아들을 살리려고 귀양 중간 길인 추자도에 어린 황경헌을 갈대밭에 내려놓았고, 마을 노인이 키웠다. 아직 그 후손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신평곶자왈
신평곶자왈 입구다. 마치 내 영혼이 지옥 입구에 들어선 듯 음산한 기운이 인다. 육지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습지에 잡목과 풀들이 우거진 척박한 땅이다. 그곳에도 개간하려고 들어온 한 가족의 흔적이 있다. 이곳에서 어떻게 살려고 자진해서 들어왔을까?
신평곶자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곶자왈이다.
맨발로 가는데 뱀이 지나간다. 놀란 가슴으로 자꾸 발 밑을 본다. 화산 폭발 후 강도 높은 용암이 넓은 지역에 깔려서 습기가 땅밑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어 음습하다. 잡목과 가시덩굴이 가득해서 악어 뱀 등 파충류가 나올 것 같다.
바닥을 가득 메운 크고 작은 용암과 돌멩이가 거칠게 맨 발바닥을 아프게 한다. 그나마 돌 위를 덮은 낙엽이 있어 아픔이 완화한다. 이제 제발 그만하는 생각이 수차례 반복된 후 길은 끝난다. 한 시간 이상 거친 돌길을 걸어 발바닥이 얼얼하다.
오늘 미세 먼지가 많아 산봉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온도가 25도로 높고, 햇빛이 강해 반팔과 반바지에 노출된 팔과 다리가 점차 붉게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