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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 맨발 걷다 2 코스 -보석 같은 우도

by 신피질

성산에서 일출을 봤다. 해는 완벽하게 주홍색 둥그런 원판을 드러내며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곳 일출은 숨을 멈추게 하고, 가슴을 벅차게 하는 기운을 만든다.


해는 좌측의 우도, 우측의 성산 일출봉 절벽 사이, 희미한 바다 안개 사이로 빛의 화살을 가차 없이 쏜다. 파도 소리는 심장까지 울리고 아침 새는 해가 쏘는 화살을 맞으며 저희끼리 부산하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 희망 평화 행복 등도 버리자. 이번은 사랑만 안고 가자. 연노랑, 연보라, 흰색의 꽃이 아침 해에 점차 밝게 빛나는 것만 바라보자.


성산에서 일출을 봤다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도 하지 말자.

감각의 격정에서 벗어나 깊게 숨을 마시고 그냥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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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해변에서 본 일출


해는 검은 수평선 구름을 벗어나 높이 솟아 바다 한가운데 눈부신 흰 빛 길을 만들고 모세의 기적처럼 나를 끈다. 하지만 이제 너를 떠나야겠다.

너도 무수 한 별들 중 그저 하나인 것을…




올레 1-1코스 우도 길

우도에 흠뻑 젖었다. 우도는 보석 같은 섬이다.

왜 사람들이 이 섬에 오고 싶어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색적인 풍경이 내 눈과, 손 끝, 코 끝 그리고 심장 속으로 꽉 차 들어왔다.


구불구불한 돌담길 경계로 낯익은 작물들이 자라고 있어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자주 나타난 밭에는 보리들이 이삭을 꼿꼿이 세우고 햇빛과 시원한 봄바람과 어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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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싱싱한 보리밭 풍경



나도 온몸에 힘을 빼고 산들바람처럼 살며시 걸어간다. 감자 잎도 푸른 잎을 땅에 대고 싱싱한 대지에서 수분을 공급받고 영양소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말들은 안장을 찬 채 두리번거리고 소들도 우리에서 나와 파랗게 올라온 풀을 뜯어먹는다. 가까이 가서 소 눈을 보니 검은 눈 속이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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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을 뜯는 소 풍경


어릴 때에 키웠던 소가 생각난다. 언젠가 아버지가 작은 송아지 한 마리를 사 왔다. 그 송아지가 어른 소가 될 때까지 10년 이상 키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 대학 등록금 내려고 그 소를 팔았다.


가족 여행 때 프로방스 지방 한 도시 원형 경기장에서 투우사의 마지막 칼을 맞고 쓰러지기 직전 멍하니 십여 초 걸었던 투우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소의 영혼이 떠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제주는 죽은 자가 잘 대접받는 듯하다.


돌담을 사방으로 잘 쌓아서 봉분이 잘 보존된 무덤이 곳곳에 있다. 화산섬이라 쓸 만한 땅이 귀했을 터인데 밭 가운데에 무덤을 만들고 제법 넓게 네모지게 돌담을 쌓았다.


죽은 사람도 엄연히 양식을 생산할 소중한 땅 한 귀퉁이를 차지한 셈이다.


구불구불하게 매번 크게 도는 길, 돌담이 제각각 모양으로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길, 크기와 모양이 모두 다른 작은 밭들, 사이의 길.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야 하는 우도 올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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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돌담



우도의 명물에 서린 백사가 있다. 모래가 석고처럼 하얗다. 바다가 에메랄드색을 띠고 앞쪽에 바닷물에 잠긴 모래도 백색이다.


모래를 한 줌 집어서 보니 일반 모래처럼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곡선의 작은 알갱이들이다. 광물이 아닌 식물 모래이다. 안내판을 보니 산호로 만들어진 모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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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린백사


우도 올레길 마을은 슬레이트 지붕이 많다. 푸른색 빨간색 지붕이 많고 마당과 길들은 시멘트로 포장해서 먼지가 없다. 우도는 전기 차 만 허용되어 공기가 깨끗하다.

밭에서 일하는 여인들이 보이고, 노란 유채 꽃이 절정이다.


우도의 정상 쇠머리 오름은 높이가 132미터이다.


따뜻한 봄 날씨에 겉옷을 벗고 반팔 티셔츠만 입고 올랐다. 산등성이에서 길게 이어지는 정상오르막길은 우도가 여행자에게 주는 산뜻한 선물이다. 사방의 전망이 색다른 파노라마를 만들고 있다.


경쾌한 즐거움이 인다.


색다르고 경이로운 풍경에 신체는 팽창되고 내면의 에너지가 고양된다.


왼쪽은 끝없는 태평양과 저 멀리 아득한 수평선, 오른쪽은 평탄 한 분지와 성산 일출봉, 앞쪽은 등대로 이어지는 아스라한 오솔길, 뒤쪽은 파도 분말 일으키며 관광객을 태운 쾌속 보트와 그 옆의 검멀레 마을…


능선의 기운은 내 몸을 가볍게 만들어 사방으로 퍼트린다.


정상에서 내려온 길목에 있는 등대 공원 소나무 향이 코끝에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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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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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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