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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현 Oct 22. 2023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도전 D+33,34) 211km/ 누적 거리: 5151km

(Day 33)

어젯밤 폭우가 내려서인지 매우 쌀쌀했다.

여벌의 옷도 없어서 침낭 속에서 꽁꽁 웅크린 채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결국 9시가 되어서야 텐트 밖으로 나왔다. 자전거를 확인해 보니 가방 속에 물이 차 있었다.

바로 길을 나서고 싶었지만, 물건을 모두 말려야 했다. 결국 11시가 되어서야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지 어느덧 24시간이 지났다. 너무 배가 고파서 에너지바로 허기를 달랬다.


오늘도 산세가 험했다.

미국 서부를 사막이 지키고 있었다면 동부는 수많은 산맥이 지키고 있었다.

보급을 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더 힘들었다.


Clearfield라는 도시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지도도 없어서. 구글 맵을 통해서 조금씩 나아갔다.

구글 맵에 너무 의지한 탓일까. 자갈길에 갇혀버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험난한 길이 이어졌다.


자갈길은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쥐약이다. 타이어가 많이 닳기도 하고 체력 소모도 심하다. 하지만 내리막에서도 속도를 낼 수 없어서 빠져나오기도 힘들다.


결국 구글맵을 끄고 국도로 이동했다. 아주 가끔 갓길이 없어서 위험한 상황이 생기긴 했지만 오프로드보단 훨씬 나았다.


한참을 달려서야 Parker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문을 연 식당은 단 하나뿐이었다.

운명이라 생각하고 식당 문을 열었다.


신이 나서 메뉴를 잔뜩 시켰다. 원래도 대식가였지만, 자전거를 탄 이후로 식성이 더 좋아졌다.

망설임 없이 사이드메뉴와 메인메뉴를 각각 2개씩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 아저씨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말에 놀란 아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식당에 있던 모든 사람이 내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수많은 응원을 받게 되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입맛이 싱거운 나에게 조금 짜기는 했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 치웠다.


그때 갑자기 서빙하던 직원이 나에게 티셔츠를 건넸다. 식당 주인이 선물로 티셔츠를 사주셨다고 했다. 알고 보니 어느새 내 도전 소식이 주방까지 전달되었던 것이다.


주인 밥 아저씨는 직접 나와 “미국에서 가장 작은 도시에 온 걸 환영한다”며 인사까지 해주었다.

알고 보니 우연히 미국에서 가장 작은 마을을 지나고 있던 것이다.


대화를 나누던 중, 밥은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주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왔을 땐 그의 손에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한 작가가 쓴 모험기였는데 모험 중인 나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시골의 정겨운 분위기였다.


마음을 따뜻한 정으로 가득 채운 뒤 길을 나섰다.

이대로라면 미국 횡단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Day34)

도로 위를 달리면서 3천 마리가 넘는 동물들을 봤다.

버팔로부터 사슴, 뱀, 아르마딜로, 독수리 등 그 종류가 다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본 동물의 대부분은 도로 위에서 싸늘하게 죽어있었다.


오늘도 고개를 처박고 언덕을 올랐다. 한참을 오르다가 숨이 가빠서 들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동물 사체 썩는 냄새가 코를 타고 목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로드킬을 당한 동물은 상상 이상의 악취가 난다.

그래서 죽은 동물이 보이면 숨을 참고 지나가는데, 이번에는 차마 발견하지 못했다.


어떤 동물이 죽어있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죽은 동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갓길에 사슴 한 마리가 얌전히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뿔의 크기를 보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같았다.


도롯가는 위험해서 숲으로 보내기로 했다. 자전거를 돌려서 사슴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위기를 느꼈는지 사슴은 도망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사슴은 몸을 일으키기 위해 엉덩이를 들었지만 이내 다시 주저앉았다.

몇 차례 반복하더니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도와주려고 더 가까이 다가가자 몸에 붙어있던 수십 마리의 파리 떼가 날아올랐다.

알고 보니 새끼 사슴은 차에 엉덩이를 치어 죽어가던 중이었다.


죽어가는 동물을 본 건 처음이라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손을 흔들며 차들을 멈춰 세웠다.


다급히 손을 흔드는 나를 보고는 몇몇 차들이 속도를 줄였다. 멈추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좁은 길에서 차를 돌릴 수 없었는지, 결국 나와 사슴을 지나쳐 갔다.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슴을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고 싶었지만, 사슴의 엉덩이는 이미 악취가 날 정도로 썩어있었다.


한참을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한 뒤, 결국 다시 자전거를 돌렸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좁은 길에 계속 서있다간 나도 사고가 날 것 같았다.


계속 사슴의 눈망울이 생각이 났다. 라이딩을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얼마 못 가서 근처 캠핑장에 자리를 잡았다.


죽은 동물에 제법 익숙해졌을 때쯤 죽어가는 동물이라니.

아직은 도로가 너무 무섭기만 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슴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도로 위에서 아찔하게 주행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삶에 대한 애착이 남아있는 사슴의 눈망울을 보며 삶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슴아 좋은 곳으로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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