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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현 Oct 22. 2023

불확실성

(도전 D+31,32) 255km/ 누적 거리: 4940km

아침 일찍 모텔을 나섰다.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뉴욕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동부 산악지역에 대한 악명을 익히 들었지만, 지형이 생각보다 더 험했다.

크고 작은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졌다.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았고, 허벅지의 피로도도 다른 날보다 훨씬 심했다.

중간중간 멈춰 서며 보급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한 주유소에서 프레드 아저씨를 만났다. 나에게 이것저것 묻더니 본인도 17살 때 클리블랜드에서 오클라호마까지 히치하이킹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나에게 가족들을 소개해 주며 행운을 빌어줬다.


내 도전에 관심을 보이는 아저씨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과거를 후회하는 사람, 그리고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 

실천의 힘을 아는 프레드 아저씨는 후자였다.


인사를 나누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은 숲길을 따라 달렸는데, 기분 좋은 흙내음이 났다.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까 주유소에서 쉐럴 아주머니가 비가 올 거라고 이야기했었던 게 문득 생각났다.


핸드폰을 켜고 날씨를 확인해 보니 역시 기상이 좋지 않았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다. 숲길에 갇혀버린 위험한 상황. 일단 서둘러 큰길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도로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도로에 물이 고여있었다. 차들은 그 위를 미끄러지듯 쌩쌩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가 한 가게를 발견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문을 열려고 하는데 거짓말같이 비가 그쳤다.


쫄딱 젖을 채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물을 사기 위해 들렀던 한 편의점에서 미국인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도전을 해보니까 어때? 네가 생각했던 거보다 더 힘들어? 아니면 덜 힘들어?”

그의 질문에 큰 고민 없이 훨씬 더 힘들다고 답했다.


이유를 묻는 그의 질문에 "불확실성"이라고 답했다.


미국 여행을 하면서 가장 힘든 건 신체적인 고통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고통스럽게 한 건 매일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은 매일 찾아왔고, 정해진 게 없는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불안해야 했다.


준비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미리 알고 대처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예상치 못한 악천후를 만나기도 하고, 자갈길이나 고속도로에 갇히기도 한다.

손바닥이 찢어지기도 하고, 갈증과 배고픔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한 번은 언덕을 넘는데 풀숲에서 약에 취한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갑자기 뛰어나왔다.

그는 나를 부르며 풀숲으로 거미를 보러 가자고 이야기했다.

따라갔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하곤 혼신의 힘을 다해 오르막을 넘었다.


남자는 한동안 나를 따라왔다.

한참을 미친 듯이 달린 후에야 그가 사라진 걸 확인했다.


한동안 사색을 이어가다 보니 내게 닥친 불확실성이 마냥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였다.


상황을 꽤 유연하게 대처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음식을 구하기 위해 눈웃음을 지으며 영어를 말하고,

지도 없이도 스스로 결정을 내려 위기를 해결했다.


아무도 없는 길을 달릴 때는,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와 대화를 하기도 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나와 대화하다 보니 그동안의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정도의 교훈이 있는 고생이라면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남들이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 불확실성과 한계를 경험하며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게 도전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역시 도전은 언제나 남는 장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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