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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현 Oct 22. 2023

빛나는 사람들

(도전 D+36) 131km/ 누적 거리: 5405km

어젯밤 힘이 다 빠진 채로 숙소에 들어왔다. 종업원 리나는 센스 있게 지친 나를 가장 가까운 방으로 배정해 줬다.

그녀의 배려심 덕분에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했다. 고마움을 전하고는 길을 나섰다.


오늘은 경사도가 심한 산들을 넘는 날이다. 경사도 14%의 가파른 언덕을 여러 차례 넘어야 했다. 최고 경사도는 무려 16%였다. (남산의 평균 경사도는 6%)


산을 많이 넘어야 한다는 핑계로 고칼로리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평소에 마음 놓고 먹지 못했던 중식들도 죄책감 없이 즐겼다.


예상대로 하루 종일 쉽지 않은 순간들이 이어졌다.

그냥 넘어도 힘든 산을 30kg가 넘는 자전거를 끌고 가려니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뉴욕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됐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목표했던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의 숙소는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한 주립공원이었다.

확실히 주에서 관리하는 곳이라 깔끔하고 시설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체크인을 하는데 흑곰을 조심하라는 표시가 눈에 띄었다.

다행히 아직 만난 적은 없지만 앞으로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샤워를 했다. 마실 물이 없어서 물 한 모금을 구하기 위해 이웃 텐트를 찾았다.

혹시 물을 좀 받을 수 있는지 묻자, 넬슨과 마리아는 물 7병을 봉지에 담아 건네주었다.

이것이 미국의 정인가?


배고프지 않냐고 물으면서 저녁 식사에도 초대해 주었다.


넬슨은 나를 부러워했다.

코로나 전에는 자전거를 많이 탔는데, 그간 살이 너무 많이 쪘다면서 다시 운동을 시작할 거라 했다.

나에게 큰 자극을 받았다며 고맙다고 했다.


넬슨 가족 덕분에 핫도그와 햄버거를 배부르게 먹었다.

밥을 먹는 내내 아이들에게 미국 여행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제 빨아 놓은 옷들이 걱정이었다.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진 것에서는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데, 아침에 젖은 옷을 입으면 체온을 모두 빼앗기기 때문이다.


때마침 옆 텐트에서 캠프 파이어를 하는 중이었다. 이번엔 조심스럽게 불을 좀 써도 되는지 물었다.


시리즈는 아줌마는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성격이 좋았다. 의자를 가져다주며 얼마든지 불을 쓰라고 했고, 이제부터 본인이 엄마라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하라고 했다. 원하면 우유를 주겠다는 화끈한 미국식 농담을 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에게는 나와 동갑인 딸이 있으셨다.

그래서인지 아주머니는 나를 유독 기특해하셨다. 내일 아침 식사도 꼭 먹고 가라고도 하셨다.


옷을 말리면서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별들을 보고 있으니 그동안 도전에 함께 해주었던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밤하늘을 꽉 채운 별처럼 말이다.


배도 부르고 마음마저 따뜻했던 완벽한 밤.

한참 동안 모닥불과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이제 이틀 뒤면 뉴욕 도착이라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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