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내가 흉내낸건 사람일까?
나는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한다.
손으로 근육을 만지고, 관절을 움직이고, 회복이라는 단어를 믿으며 하루를 보낸다.
치료실에서는 늘 적당한 표정을 짓는다.
너무 무심하지도, 너무 진심이도 않는 얼굴.
이 모든건 배운 게 아니라 익힌 것에 가깝다.
사람들은 이런 걸 사회성이라고 부르지만, 나에게는 흉내에 가깝다.
환자들은 나에게 기대를 건다.
이 몸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
이 통증이 사라질 수 있을지,
적어도 누군가는 자기 편일 거라는 믿음을 같은것.
나는 그 기대를 함부로 부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게 내가 이일을 계속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모든 것이 회복될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포기하는 순간을,
통증보다 감정이 더 단단하게 굳어버린 상태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가끔은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정말로 죽이고 싶은 건 아니다.
죽이고 싶은 건 그 사람 안에 눌어붙은 분노, 체념,
타인에게 상처주는 방식으로만 살아남으려는 감정들이다.
그걸 없앨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더 오래, 더 성실하게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물리치료사이고,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근육은 풀 수 있어도 생각은 풀리지 않고,
자세는 교정할 수 있어도 인생은 교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 퇴근길에 조금씩 사람이 아닌 것이 된다.
집에 돌아오면 방구석에 앉아 가만히 생각한다.
오늘 하루 나는 얼마나 사람처럼 행동했는지,
얼마나 잘 흉내 냈는지.
그리고 그 흉내 속에
내 진짜 감정이 얼마나 남아 있었는지를.
아마 이글은 답을 주지 못할 것이다.
다만 기록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을 고치며 살았던 한 오랑우탄이
사람 흉내를 내며 버텨온 시간의 기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