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대화할 때 다 안다고 착각하는 바보들을 만난다.
우리는 자기만의 세상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자신의 고유 생각이다. 쌓인 생각은 기억과 감정을 더불어 만들어진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유독 대화를 할 때 그런 이런 케이스를 자주 목격한다. 특징적으로 경청과 질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다. 이런 데는 이유가 있다.
1-1) 경청이란 전체를 읽어내는 능력이다. 예고편만 봤다고 영화 한 편을 이해했다는 건 오만이다. 반찬 하나가 입맛에 안 맞다고 메인 음식이 맛없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전체를 경험하지 못하면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를 제대로 짚어내기가 어렵다. 심리상담을 받으면 왜 심리상담사가 상담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경청할까? 사람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공감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1-2) 인간은 참 이기적이다. 대체로 그렇다. A라는 사람이 최근에 봤던 영화를 주제로 이야기한다면 듣고 있는 B는 자신이 최근에 봤던 영화 혹은 영화관 관련으로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이때 말하고 있는 A의 말에 경청은커녕, 자신의 기억 서랍장을 열어보고 다닌다. A는 말한다. '내 말 듣고 있어?' 어쩌면 본능 같은 현상이다. 오로지 말하는 자의 말을 집중한다는 건 꽤나 큰 집중력을 요구하기도 하며, 타인의 세상을 읽어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대체로 경청하는 인간은 드물다. 경청하는 인간을 만나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그가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있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며, 이와 대화하는 게 무척이나 신난다. 말을 한다는 건 탈의와 비슷한 개념이다.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의사에게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는 유사한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 자신의 용기와 상대에 대한 믿음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2-1)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던진 언어의 의도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작 상대가 듣고 느꼈을 때 느끼는 의미는 존중하지 않는다. 이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참 바보 같은 일이다. 의도와 의미의 교차가 생기는 경우는 추상적이라서 그렇다. 시작이 추상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질문을 던져도 추상적이다. 추상은 넓고 깊은 우주 혹은 바다와 같아서 이해하기 어렵다.
2-2) 마찬가지로 이해가 안 된 부분을 콕 짚어서 이야기할 줄 모른다. 마치 갑자기 우는 아이 같다. 우는 반응 하나로 아이가 배가 고픈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건강한 정신을 지닌 성인은 다르다. 자신이 무엇이 먹고 싶은지까지 명확하다. 어디가 아픈지 모른다면 병원을 간다. 이처럼 '명확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대화를 할 때 이런 '명확성'이 없는 경우가 있다. '내가 대화를 듣다 보니까, 이 부분에서 이해가 안 되는데, 이해한 부분이 이게 맞을까?' 이런 식으로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배려한다면 상대는 기쁘다. 질문은 이해가 안 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대화를 더 잘 듣고 있다는 끈끈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멋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판단할 것이라면 대화를 듣지 않는 편이 낫다. 용기 내서 무대에 올라 재롱을 부리는 어린아이에게 박수는커녕, 심사위원의 역할을 할 것이라면 말이다. 좋은 대화란, 상대방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온전히 들어주는 것. 그리고 소설을 읽듯 상대의 배경과 마음을 이해하는 것. 쉬워 보이는 이런 대화 속에서도 꽤나 많은 요구가 들어간다.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건 중요한 덕목이나, 자신만 맞다고 고집 피우고 자신의 세계에 갇혀사는 건 중요한 덕목인지 그다지 모르겠다. 모든 행동과 언어는 생각의 투영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즉슨, 자신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만큼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