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날, 운명에 대해 선택하는 법을 깨달아버렸다. 내 삶의 대부분은 운명에 내맡기고 살아왔다. 그게 편했으니까. 인연도 운명이고, 내 모든 상황도 운명이니. 그려려니 하며 주어진 상황에 끄덕이며 살았다. 불행해도 그만, 행복해도 그만. 어차피 돌고 돌아 불행하다면 행복한 날이 오고, 행복한 날이 오면 불행한 날이 오니. 그런 운명의 시소에서 즐기는 게 전부였다.
2. 안 좋아도, 좋아도 모든 게 운명을 탓하니. 점차 운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잘못된 부분마저도 운명이란 핑계를 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만일 운명이란 게 없었다면 무엇을 탓했을까. 자신에게 의문을 던졌을 확률이 높다. 내 선택에, 스스로의 잘못을 고스란히 느끼게 될 테니. 반대로 좋은 일에도 더 많은 기쁨을 느끼게 되겠지. 그런 생각이 끓어오를 때쯤, 더 이상 운명에 인생을 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3. 운명을 믿었던 건 그려려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려려니 하지 못하면 삶이 망가질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정작 떼어내니 난 꽤나 괜찮았다. 오히려 운명이 없다고 생각하니, 몸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유아용 젓가락만 의지하던 아이가 유아용 젓가락 없이, 당연하다듯 젓가락 질을 하는 것처럼. 이제는 내 선택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더욱 관찰하게 되었다. 어떤 선택이든 책임지겠다고 다짐한 꼴이니,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으며 더욱 나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4. 이때부터다. 인생에 선택하는 방법을 배웠다. 원하는 삶이 있다면, 그 삶이 정말 진정으로 원한다면. 내 선택을 믿고 스스로 버팀목이 되어준다. 이전에는 공감하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고, 때론 힘들고 한계를 맞이해도 포기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단지 내 선택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 또한 운명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본다면 부정하진 못한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게 하나 있다. 이전엔 운명이 주사위였고, 이젠 운명을 쥐었다. 내 뜻대로 원하는 삶을 위해 항해하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