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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Dec 12. 2023

우리는 어떻게 자존을 가질 수 있을까?

놀림을 받는 조카를 보며...(다소 긴 글)

한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을 통해 세명의 조카가 생겼다. 내가 첫 손녀로 가족들 뿐만 아니라 친척들의 관심을 듬뿍 받았던 것처럼 큰 조카인 유정이도 양가에서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자랐다. 관심이 과했는지 초등학교 5학년인데 벌써 내가 입지 않는 옷을 물려줄 정도로 등치도 크다.


게다가 동생을 줄줄이 둔 K장녀답게 배우려는 의지도 남다르다. 내 동생들은 '유정이 너는 딱 큰 이모(본인) 닮았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성적에 욕심도 많은 친구다.


자존감도 높고 반장도 줄곧 해 학교 생활을 잘 지내고 있나 보다 했다. 조카들을 물고 빨고 하는 사랑 많은 이모는 아니지만 얼마 전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영어학원에서 또래 남자애들 4명이 유정이를 놀림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동생은 이런 일이 있으면 선생님이나 놀린 아이들 부모를 만나 담판을 짓는 게 아니라 유정이를 구슬리고 참으라고 하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유정이는 친구들 놀림을 참으며 1달 동안 학원을 다녔다. 그러다 얼마 전 도저히 안 되겠는지 학원을 바꾸고 싶다고 했단다.

남학생들이 이상한 그림을 그려 쪽지를 돌리면서 유정이를 놀리는 모양이다. '애들이 쪽지를 돌리며 놀리는데 유정이 앞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쓰레기통이 어디에 있냐고 다른 남학생한테 쪽지를 보냈어. 그랬더니 쪽지 받은 애가 니 뒤에 있잖아' 하면서 유정이를 쓰레기통 취급했다고.


아이들에게 한 번 타깃이 됐으면 뭐 저런 쪽지뿐만이겠는가? 매일 저런 일을 한 달간 당했을 조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쓰레기통'에 흥분한 동생은 학원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학원 원장선생님은 사건 파악을 위해 이틀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다음날 선생님은 놀렸던 남학생 4명을 불러 놀린 이유를 물었고 아이들은 변명도 하지 못했다.


학원 선생님이 동생에게 말하기를 '어머니, 저는 아무리 화가 나도 언성을 높이지 않는 사람인데 너무 화가 나서 아이들에게 아주 따끔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유정이가 사과도 받았으니 유정이 마음이은 어떤지 어머님이 물어봐주세요.' 사과를 받았지만 유정이는 학원을 바꾸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언니, 알지? 내가 유정이 영어학원 좋은데 알아볼라고 레벨테스트 다 받고 여기저기 얼마나 애쓰고 찾았는지, 이 학원이 제일 좋고 마음에 들었는데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 그래서 내가 유정이한테 너 어딜 가도 저런 애들 없을 것 같냐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

동생은 내가 성적에 욕심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에 공감할 거라 생각하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유정이가 너무 걱정됐다. 등치도 크고 조숙해서 사춘기가 빨리 올 것이고, 동생 눈치를 보느라 조금만 다그치면 바로 수긍해버리거나 깊은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넌 지금 유정이가 제일 좋은 영어학원 못 다닐까 봐 걱정되지? 부모로서 그런 마음 충분히 들 수 있어. 그런데 내가 유정이었다면 한 달도 못 참고 학원 바꾼다고 했을 거 같아. 거기 레벨테스트받고 가는 곳이라 최상위반은 딱 하나잖아. 반을 옮길 수도 없고.

 

나는 유정이가 원하면 학원을 옮기는 게 좋을 거 같아. 아무리 선생님이 시켜서 애들이 사과를 했어도 그게 진심일리 없지 않을까? 게다가 원생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해야 하는 학원 선생님이 유정이 한 명을 위해 나머지 4명을 버릴 각오로 얼마나 혼을 냈을까 싶어. 


그 선생님 말씀을 믿고 싶지만 솔직히 아닐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해. 난 네가 유정이한테 묻지 말고 차분하고 편견 없는 유정 아빠가 이야기 들어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해?'



'이제 시대가 변했어. 창의적인 생각 없이 그저 기계처럼 학교 성적만 잘 받아서 좋은 대기업 들어가 봐야 1-2년도 못 버티고 나오는 청년들이 수두룩해.


네가 그 학원을 고집하는 것보다 유정이 적성을 같이 찾고 발견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유정이가 공부를 안 하는 애도 아니고 욕심 많아서 잘하고 있는데 걔가 오죽하면 그러겠어. 우리도 어릴 때부터 받았던 입시위주의 교육 때문에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먹고살기 위해 직장에 다니잖아.

요새 초등학생들 자살률도 증가하고 있어. 물론 유정이야 강한 친구지만 아무도 모를 일이잖아. 성적 관리는 유정이가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까 너는 유정이가 어디에 관심 있는지 잘 살피고 유정이랑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자기감정에 대해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어떨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니지만,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면서, '어린 시절 나에 대해 생각해 보고 관심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줬던 어른이 한 명만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래서 진로 강의를 나가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관심 없을지언정, 단 한 명이라도 바뀌는 학생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오늘 선생님은 간호사라는 직업에 관해 자세히 알려줄 거지만 그건 다 잊어도 돼요. 대신 여러분 자신에 대해,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매일 짧게라도 기록하는 습관을 갖으라고 했던 건 꼭 해보길 바래요.'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 적성에 안 맞는 전공을 선택해서 방황했던 이야기 들었죠? 지금부터 자신에 대해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 방황하는 시기가 오더라도 큰 힘이 될 거예요'


어떻게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존을 길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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