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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고장이 만들어준 뜻밖의 루틴

가볍게 해 보자. '아님 말고'

by 희원다움

'또 늦었다'


나갈 때마다 밍기적거리는 나쁜 습관이 있다. 1시간 일찍 일어나도 5분 늦게 일어나도 나갈 때는 정해놓은 마지노선보다 늘 늦게 나간다. 오늘도 역시... 급한 마음에 현관에 있는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습니다'하는 선명한 소리 대신 '삐끼끼익' 생소한 소음이 들렸다. 신발을 구겨 신고 달려 나가 보니 엘리베이터 옆에 황색으로 내려옴을 알리는 화살표가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데?'


엘리베이터 앞에는 공고문이 붙어있었다. '금일 새벽 스프링클러 작동으로 엘리베이터를 수리 중이니 계단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망했다'


다행히 탑층(21)은 아니지만 11층에서 지하 주차장까지 언제 내려가나 막막했다. '이미 늦었는데... 내 탓이지 뭐'


어찌어찌 출근을 하고 한참 환자를 보던 중 반가운 카톡이 왔다. 기다리던 김치가 도착할 예정이니 배송지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10kg나 되는데 당연히 문 앞이지. 거의 다 먹었는데 타이밍 굿이고:)'

퇴근길, 집에 있는 남자친구한테 기겁할 사실을 들었다. 엘리베이터는 아직도 수리 중이고, 나는 지하 1층부터 11층까지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 게다가 김치는 집 앞이 아니라 관리사무소에 있단다.


'11층을 걸어 오르라고? 무슨 아파트가 이래?'


투덜거리며 계단을 오르는데 1층에서 아이를 업은 할머니 한분이 뒤따라오셨다. '저층에 사시겠지. 수리 중인 거 알면서 내려가셨겠어?' 했는데, 11층이 다되도록 내 뒤에 오시는 거다. 알고 보니 옆집 이웃이었다.

그 연세에 아이까지 업고 계단을 오르시는 분도 계시는데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계단을 오를 때 느낌은 러닝머신을 5km/h에 맞추고 걷는 정도의 강도로, 11층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할만한데? 남들은 일부러 운동삼아 오르던걸?'

'오늘부터 루틴에 추가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볍게 나의 하루에 끼워 넣는다. 물론 직접 해보면 영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러면 굳이 꾸역꾸역 스트레스받으면서 하지 않는다. 안 해도 그만이다. 아무리 수백 명이 말하는 성공 습관이라도 본인한테 안 맞는 건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좋은 습관을 '지킬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행하는 것이 꾸준함의 비결이다. 나에게 잘 맞는 루틴으로 가득 찬 하루가 어찌 풍성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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