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시절, 나는 극도로 예민했다. 수능 1점에 벌벌 떨며 불안해 잠도 못 잤다. 입맛도 없고 빈속에 차가운 캔커피만 꿀떡꿀떡 마시며 졸음 참았다. 사당오락은 옛말이고 수험생은 컨디션 조절이 중요한데 잠을 못 자니 매일이 컨디션 난조였다.
그해 무덥던 여름, 갑자기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었다. 그것도 브랜드 치킨집에서 배달이 되는 것 말고 재래시장 이름 없는 닭튀김 가게에서 파는 치킨말이다. 기름 가득한 까만 솥단지 안에서 지글지글 막 튀겨 나온 닭다리를 짭짤한 소금후추에 찍어 콜라를 벌컥벌컥들이키고 싶었다.
주말 미사를 보러 성당에 가시는 아빠한테 특별주문을 했다. 오는 길에 시장에들러 꼭 통닭을 사다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평소 음식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때는 바싹하게 튀겨진 따끈한 닭다리가 어찌나 먹고 싶던지. 그것만 먹으면 수능 5점은 더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대에 부풀어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두어 시간 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용수철처럼 튀어나갔지만어찌 된 일인지 아빠는 빈손으로들어오셨다.
'아빠, 통닭은?'
'다른 아줌마, 아저씨들 태워오느라 시장을 못 들렸어. 나중에 사다 줄게'
'나중에 언제? 나 수험생인데 아빠가 해준 게 뭐 있어? 이까지 통닭 한 마리 안 사다 주고'
짜증이 나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내가 비싼 과외를 시켜달래? 유학을 보내달래?'고3딸이처음으로 시장통닭이 먹고 싶어 죽겠다는데그 소원하나 못 들어준 아빠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고3이 뭐 벼슬이라고자식들 뒷바라지만 하다 돌아가신 아빠한테서운했던 감정이 아직도기억날 건 뭐람? 마흔이 넘어까지 별 걸 다 기억하는 주책맞은딸이지만오늘따라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
아빠, 하늘에서 잘 지내시죠? 살아계실 때 치킨 한번 사드리지 못하고 원망만 했어요. 나중에 아빠 옆에 갈 때맛난 치킨 들고 갈게요.그때는 같이치맥 한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