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간호사로 일하다 보니 태어난 지 2~3일 된 조그마한 신생아들을 자주 보고 있습니다. 작게는 2.5kg~3kg 중반 정도 되는 아이들이 일주일, 1달이 지나 쑥쑥 커오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기까지합니다.
어느 날 논문을 검색하다 우연히 신생아 평균 몸무게가 3.32kg라는 사실을 알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습니다.저는 4kg, 신생아 중 몸무게 서열 90% 안에 드는 우량아로 태어난이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어머니를 제왕절개의 순간까지 몰고 갔던 4kg의 그 아이는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으로 삐쩍 마른 몸매를 가진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과자를 주식 삼아 세끼 군것질만 하며 몸에 나쁜 짓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건강하지 않은 음식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까탈스러운 편식 주의자가 돼버렸습니다.
과자는 절대 입에 대지 않고 백미, 밀가루, 설탕이 들어간 음식과 지방이 많은 고기를 안 먹은 지 10년이 넘었네요.
한국인은 모름지기 밥심으로 살고 같이 밥을 먹으며 정을 쌓는 다는데, 저는 식구들과도 같은 식탁에 앉아 제 마음이 허락한 음식만 먹는, '네 강박이 좀 많이 심한 사람'입니다.
소식을 하진 않지만 음식은 거의 날 생선, 두부, 채소, 해조류, 과일, 고구마 등 건강식으로 알려진 것만 먹습니다. 그래서 외식 장소는 대부분 뷔페나 횟집이고 술집은 날 생선을 먹을 수 있는 이자카야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술을 안마 시진 않으니 건강식만 고집한다고도 할 수 없고, 제 마음대로 기준에 허락된 음식만 입에 넣는 고집을 가진 그냥 희한한 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치려고도 해봤지만 그 노력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아 폭식증까지 겪었습니다. 이런 식성으로 연애는 어떻게 하고 결혼은 할 수나 있을까 걱정했는데, 제 식성에 적응해 같은 식탁에서 다른 메뉴를 먹어도 어색해하지 않는 남자 친구랑 연애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렸고 헤어짐도 있긴 했지만요.
주변의 우려와 걱정과 달리 제 건강상태는 양호한 편입니다. 피부가 좀 누렇고 매가리가 없어 보인다고 하지만 간수치도 멀쩡하고 2L 생수 6병도 거뜬히 옮기는 깡다구도 가지고 있거든요.
음식에 대한 강박은 애써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으니 고기도 좀 먹고 달달한 초콜릿도 죄책감 없이 먹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성격도 나름 유해지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대학 때부터 꿈쩍도 않던 몸무게가 2~3kg 증량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넌 쪄봤자 티도 안 난다'라고 하지만 저는 없던 (지방) 핸들이 배에 생기니 불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마르나 살집이 있으나 원래 자기 몸에 없던 지방이 끼면 어색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식성의 변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일부러 애쓰진 않겠지만 건강해 보이는 몸매를 갖고 싶어 졌거든요. 조금은 편견 없이 음식을 대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맛을 즐기는 덜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