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정해버린 '결혼 적령기'에 연연하지 않지만, 어른들이 왜 결혼은 '어릴 때 멋모르고 해야 한다'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한번 갔다 온 게 흠도 아닌 이 시대에 '마흔', 아직까지 미혼입니다. 비혼 주의자는 아니지만 저는 사실 결혼이 두렵습니다.'두렵다'는 말에 대부분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남들 다 하는 결혼이야. 혼자 보단 둘이 낫지. 둘 보다 셋이 낫고...
다들 그렇게 살아. 결혼해서 아기 낳고 지지고 볶고 힘들다가도 애들 때문에 웃고. 너만 뭐가 그렇게...
다들 한다는 그 결혼에, 충족되어야 하는 확고한 조건이 한 가지 있습니다. 상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으로서의 삶에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절대적인 조건이 단순히 아이를 '좋아한다' 아니면 '싫어한다'로 결정된문제는 아닙니다.
4남매 중 첫째인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앞집 친구 방 불이 꺼지지 않으면 잠들지 않았습니다. 제일 예민했던 고3 시절, 단짝 친구와 같은 반이 된 것은 가장 괴로웠던 기억입니다. 그때 저는, 친구보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1년 내 수면장애를 앓았습니다. 입시 경쟁에 남은 건 스스로 만든 마음의 상처뿐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랬습니다. 사회에서 정한 성공의 법칙을 무리해 따라가려다 행복도 느끼지 못하는 뾰족한 사람이 돼버렸습니다. 취미가 뭔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숙명적이던 '큰딸'이라는 역할에 자의적인 책임을 다하며 살다 보니, 내 삶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첫째로 태어나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삶이 아닌, 나 답게 주인공으로 인생을살아가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누군가는 제 다짐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 같은 애가 자식 낳으면 물고 빨고... 좋아 죽는 여자들 여럿 봤다.'
그래서 절대 아이는 낳을 생각이 없습니다.아이가 생긴다고 인생의 주체가 바뀌는 건 아니지만, 제 스스로 주인공을 바꿀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아 죽을 것 같은 내 자식이 사회에서 성공할 사람이 되게 말이죠.
저는, 아이한테 꽤 집착하는 엄마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 시선집 섬의 '방문객'중
아이가 온다는 건 저에겐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도시작되지 않은 아이의 일생을, 그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만져주지 못하고 조작해버리는 엄마는 되고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