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원다움 Apr 20. 2021

간호사 아니면 어때요?

평생 반려자인 나 자신 먼저 알아가세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사연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도, 적어도 저는 같은 일을 겪어본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전산과에 입학했습니다. 물론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다던 IT업계, 신입사원들에게 파격대우를 해줬던 알만한 핸드폰 회사에 취업도 했고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정말 싫었지만 학과 선택부터 직장까지 원해서 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데로 사회가 만들어놓은 잣대에 따라가려 열심히 노력했던 학생이었거든요. 병원처럼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진 않았지만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렇게 재미없고 하기 싫은 일을
평생 하면서 살아야 된다면
과연 이 일을 언제 끼지 지속할 수 있을까?

동시에 제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관두면 뭐하고 싶은데? 넌 꿈이 뭔데?'라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4년간 뼈 빠지게 등록금을 대주시던 부모님을 봐서 2년 반을 버텼지만 그러기에는 더 길게 남은 내 인생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습니다.


 이제는 때가 됐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자!

과감히 퇴사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돈 쓰고 시간 쓰고 삽질해가며 저랑 친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엔 도대체 속을 알 수 없었는데, 마음 가는 데로 해보면서 이 구덩이에 빠지고, 저 구덩이도 빠져서 기어 올라오다 보니 점점 성격을 드러내더라고요.


아,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상황을 극복하는구나. 어라? 인내심이 강한 줄 알았더니 이런 일에서는 포기도 빠르네?


아직도 경험해 볼 것이 많이 남았지만 지금은 꽤 저라는 사람에 대해 파악했습니다. 얼마 전엔 병원 동료한테 참 주제 파악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막 졸업하고 처음 병원 생활을 했으면 멘붕이 오는 게 너무 당연합니다. 이 상황을 좀 지켜볼지, 아예 방향을 틀어버릴지는 스스로 결정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그 일을 모든 사람이 하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위험도 따르고 부모님한테도 죄송스럽고, 나잇값 못한다는 충고도 받아야 되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과정을 무시해버리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 합니다. 물론 불평불만 많은 채로 말이죠.


선택하세요. 앞으로도 남은 인생은 나에게 맞는 일을 하면서 살 것인지, 어찌어찌 살아온 인생을 불평하며 이어나갈 것인지 말이죠.


이 구멍, 저 구멍 빠져보고 기어 나오는 과정이 처음엔 힘들지만 하다 보면 자주 빠지지 않게 됩니다. 나에 대해 잘 알게되면 애초에 가능성 없는 구멍에 가는 일이 줄어들게 돼요. 그러다 보면 완벽하진 않지만 타협점도 찾게 되고요.


저는 지금 하는 일, 간호사에서 타협을 봤습니다. 대신 이 일을 깊게 파보려 또 일을 벌이지만 구덩이까지 파진 않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할 나를 주어진 환경에 맡기고만 살아왔다면, 나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 노력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랑 끝까지 함께 할 내 평생 반려자는 나 자신이거든요!


꼭 간호사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이미 따놓은 면허증은 어디 도망가지 않으니 맘껏 방황해보시기 바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