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부대 10년 차 간호사의 대처하는 법
직장인에게 휴가는 소중하다. 하지만 예방접종실을 혼자 지키는 나에게 휴가는 한편으로 마음 한구석이 무거운 일이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지원 업무를 맡은 다른 동료가 내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휴가 전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환자 명단을 스크린 하고 인수인계를 준비하다 보면 평소보다 더 진이 빠져버린다. 올해는 남은 연차가 많아 이틀을 연달아 냈다. 주말을 합쳐 총 4일. 얼마 만에 누리는 긴 휴식인지... 하지만 복귀하자마자 잔뜩 화가 난 한 환자가 항의를 해왔다.
3~7일마다 알레르기 주사를 맞는 그녀는 내가 쉬는 동안 주사를 맞고 구토와 통증으로 응급실에 갈 뻔했다고 했다. 안그래도 수술을 앞두고 있어 예민함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그녀는 내 대신 업무를 본 동료를 두고 "일 처리도 느리고 불친절해서 병원에 3시간이나 있었다"며 나를 붙잡고 고객 만족팀에 민원을 넣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솔직히 만감이 교차했다. '내 당번일 때 터진 일이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이기적인 안도감이 찰나처럼 스쳤다. 하지만 곧 미안함과 난감함이 몰려왔다. 내 업무를 대신해 준 동료가 무능한 게 아니라, 예방접종실 업무는 특유의 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 번 내 자리를 대신하는 동료 입장에서는 그 리듬을 찾는 데만 반나절이 걸린다. 익숙지 않은 일을 처리하다 보니 환자에게 세심한 표정까지 지어 보일 여유가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환자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은 뒤,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정말 미안해요. 다음 주 수술 때문에 안 그래도 불안하고 힘들 텐데, 주사 맞고 몸까지 아파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요. 제가 자리를 비워서 불편을 겪게 해 드려 정말 유감입니다. 오늘 주사는 제가 직접 놓을게요. 부작용이 있는지 저랑 같이 확인해요. 만약 제가 또 휴가를 가게 되면, 환자분 상황을 특별히 더 잘 전달하고 갈게요. 정말 미안합니다."
내 눈을 피하던 환자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당신 같은 간호사가 있어서 다행이네요"라는 말을 남기고 진료실을 나갔다.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진심이 닿아 상황이 원만하게 풀린 것에 감사했다.
미군 부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지 10년. 간호사를 무시하거나, 한국인이라고 깔보거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까지 트집 잡아 진료를 못 받겠다고 버티는 환자들을 만났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마주해 해결하다 보니 어느덧 '맷집'이 생겼다. 이제는 난처한 상황이 닥쳐도 '어떻게 상황을 바꿔볼까' 고민하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힘들게 했던 환자들과 팽팽했던 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스승이었다.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더니, 피하고 싶었던 그 일들이 모여 나의 내공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내 자리를 지키며 치열하게 보낸 그 10년의 시간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