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6년 넘게 마시던 술을 하루아침에 끊었다

잘가라, 즐거웠다 '참이슬'

by 희원다움

서른 중반부터 6~7년의 세월 동안, 나의 주말은 늘 술과 함께였다. 빡빡하게 짜인 일상의 루틴 속에서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술에 어떤 안주를 곁들일지 고민하는 즐거움은 고단한 삶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다 마흔 중반을 넘어선 어느 날, 나는 거짓말처럼 술을 끊었다.


처음엔 빈번한 두통이 술 때문이라 생각했다. '두통 뭐 까짓 거 해봐야 일주일에 한두 번인데, 그냥 마실까? 술까지 끊으면 무슨 재미로 살지?' 술 없는 주말이 상상이 안 돼 망설여지기도 했으나, 당장의 고통을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하지만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 지금까지도 신경 쓸 일이 생기면 머리는 여지없이 지끈거렸다. 결국 두통은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내 마음의 불안에 따라 찾아왔다.

술이 원인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진 이후에도 나는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았다. 사실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고는 문득문득 궁금했다. "나는 왜 그토록 술에 집착했을까? 그리고 왜 지금은 아무런 미련조차 남지 않은 걸까?"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던져온 이 질문의 답을 우연히 펼친 책 속에서 발견했다.


나이 드는 것에
무릎 꿇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이 탓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마흔 중반을 넘어서니 변화하는 모습들이 문득문득 눈에 띈다. 소화 속도도 예전 같지 않고 거울을 볼 때마다 늘어가는 흰머리를 마주하는 현실이다. 강도 높은 일을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주저하게 되는 순간들도 생긴다. 그럼에도 일에 대한 열정과 새로운 도전을 향한 갈망만큼은 여전히 20대 청년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여전한 열정'과 '변해가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었다. 늘 내가 인정받고 주목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지배했고, 그럴수록 내면에는 불안과 조급함이 쌓여갔다. 어쩌면 내게 술은, 열정과 현실의 차이로 생기는 불안을 잠시나마 잠재우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 거야?"


"아니, 이제는 그 조급함을 내려놓고, 나이 들어가는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보려고."


무작정 무모하게 나를 증명하려 애쓰는 대신, 내가 먼저 걸어온 길 위에서 후배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주고 싶다. 홀로 돋보이기 위해 날을 세우기보다, 그들이 기꺼이 마음을 터놓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하고 단단한 선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마음에 품는다. 나를 증명하던 치열함 대신 채워갈 이 시간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아볼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이 듦에 무릎 꿇지 않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