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라고...?
미군부대 병원 예방접종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재미있는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이곳 환자들은 근무지 이동이 잦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마다 전 세계로 발령이 나기 때문에 예방접종 후 그 기록을 뽑아가려는 환자들이 많다. 주사를 맞은 환자들이 묻는다.
"이거 시스템에 올라가려면 며칠 정도 걸리나요? 언제 레코드를 뽑을 수 있어요?"
처음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며칠이 걸리냐는 질문을 왜 하지?'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이미 올렸어요. 3층 올라가시면 바로 뽑으실 수 있어요."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어떤 환자들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현하거나 깜짝 놀란다. 곧이어 판타스틱, 러블리, 그뢰~이트 같은 감탄사가 연달아 터진다.
실제로 미국 본토에서는 기록이 전산에 반영되기까지 보통 며칠씩 걸린다고 한다. 병원마다 시스템이 제각각인 데다, 의료진이 처치 후 기록을 최종 확정하고 행정 절차를 거치는 데 물리적인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 정부 시스템에 기록이 뜨기까지 일주일 넘게 기다리는 일도 예사다. 그러니 주사를 맞자마자 서류를 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기적 같은 행정 서비스로 느껴졌을 것이다.
문득 내가 두바이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 했지만, 행정 처리가 너무 느려 결국 3년 동안 카드 없이 현금만 쓰다 귀국했다. 우리나라만큼 모든 일이 재빠르고 정확하게 돌아가는 나라는 전 세계에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빠름'에는 양면성이 있다.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처리되는 환경은 분명 편리하지만, 그만큼 우리 마음을 쉽게 조급하게 만든다. 모두 뭔가 빠르게 나아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 여유를 갖기 어렵다.
얼마 전, 미국으로 이민 갔던 동료가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이 있는 고국에서 남은 삶을 살고 싶어 왔는데, 노동 계약이 끝나면 다시 미국으로 떠날 거라고 했다. 한국의 생활환경은 편리하고 좋지만, 사회 분위기가 너무 각박하고 힘들어 여유를 찾고 싶다는 것이다.
본인의 속도대로 살아가고 싶어도 주변 환경이 그 속도를 허락하지 않았던 셈이다. 0.1초 만에 전송되는 데이터의 편리함을 얻는 대신, 우리는 서로를 기다려줄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편리함과 조급함 사이에서 나만의 속도를 지키며 산다는 것, 그 아슬아슬한 균형을 우리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