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환자 프리스크리닝(방문 전 주사 내역 체크) 명단을 훑다가 순간 멈칫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예방접종실로 옮기기 전, 나를 꽤나 애먹였던 어르신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깐깐하고 예민했다. 병원도 워낙 자주 찾으셨던 터라 업무상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했는데, 한때는 이분의 예약이 잡혀 있으면 전날 밤잠을 설칠 정도로 내게는 어려운 존재였다.
업무가 바뀌며 기억에서 잊혀진 이름인데, 그의 이름을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래, 만나면 더 친절하게 잘해드리자'라고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그는 내가 기억하던 무서운 ‘호랑이’가 아니었다. 언제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낼 것 같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육중했던 체구는 병색 앞에 탄력을 잃었고, 축 늘어진 피부만이 그간의 세월을 짐작게 했다. 보조 기구에 의지해 위태롭게 걷던 노인, 어떤 주사를 맞으러 왔느냐는 물음에 자기 건강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무심히 답했다.
“나는 몰라. 의사가 맞으라고 해서 왔지.”
주사 처치를 마친 그가 나를 보며 툭 던졌다.
"네가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었구나."
그 말이 정말 고맙다는 뜻인지, 아니면 생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씁쓸함인지 알 수 없어 마음이 묘했다. 나는 입안에 맴돌던 소리를 결국 꺼냈다.
"저, 어르신 기억해요. 아마 3년 전이 마지막이었을 거예요."
그제야 노인이 웃음을 보였다.
"내가 너무 핸썸해서 기억하는구나?"
"당연하죠. 너무 핸썸하셔서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는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연거푸 "Thank you"를 남기고 진료실을 나섰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핑 돌았다. 나를 무섭게 했던 그 서슬 퍼런 고집조차 세월 앞에 꺾여버린 것이 못내 마음 쓰였다. 부디 다음 진료 때도 그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