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언어
“긁혔다.”
요즘 일상적으로 쓰이는 이 말은, 누군가의 말이나 태도에 자존심이 상해 평정심을 잃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끔 직장에서도 이 ‘긁힘’의 정서가 폭발하는 장면을 보곤 한다.
내 주변에 일을 굉장히 잘하는 지인이 있다. 흔히 말하는 MZ를 대표하는 '일잘러'다. 그녀의 말은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고, 판단은 빠르다. 문제가 생기면 감정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즉시 해결책을 찾는다.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이보다 일을 깔끔하게 해 줄 수 없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솔직히 나에게 부족한 당당함을 가진 그녀가 참 멋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종종 컴플레인을 받는데 그 내용은 늘 비슷하다.
“싸가지가 없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참 의아했다. 내가 아는 그녀는 결코 무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효율을 중시하고 매사에 명확할 뿐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녀가 완벽하게 처리한 일의 결과보다, 일을 처리하는 '태도'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20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사람들은 서비스의 내용보다 자신이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먼저 살핀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직원이 손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규정상 안 됩니다.”
똑같은 정보도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한 안내로 들리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이렇게 번역된다.
“당신의 상황은 예외가 될 수 없으니,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용은 같지만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이건 단순히 한국적인 정서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문화가 섞인 미군부대 역시 '리스펙(Respect)'의 언어와 태도는 중요하다. 대부분 우리는 정보를 습득하기에 앞서, 자신이 존중받고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비스라는 영역은 종종 문제를 해결하는 일보다, 상대의 마음을 여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나는 이런 의문이 든다. 그녀를 향한 컴플레인의 이유가 정말 ‘무례함’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일까?
심리학적으로 타인의 당당함에 유독 날카롭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대개 '투사'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상대의 완벽함이 나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 될 때,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상대의 ‘인성’을 깎아내려 자신의 자존감을 보호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공격하기 쉬운 단어를 골라 이렇게 내뱉고 만다.
“싸가지 없어.”
어쩌면 이 말 속에는 '당신의 확신에 찬 거침없는 태도가 내 부족함을 확인시키는 것 같아 불쾌하다”라는 고백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일 잘하는 사람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결과를 우선하는 이들은 때로 ‘효율의 언어’에 집중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경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많은 고객은 '관계의 언어'를 기대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얼마나 불편하셨어요.”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앞에 붙는 5초짜리 공감은 상대가 서비스를 받아들이는 기분을 완전히 바꾼다. 직장은 이 두 언어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을 정확히 처리하는 것과 상대를 납득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어떤 사람은 효율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관계에 강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듣고, 또 다른 누군가는 “착한데 일은 못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물론 일처리, 태도 둘 다 완벽한 육각형 인간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결국 조직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이 두 가지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문제를 해결하는 효율의 언어와,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관계의 언어.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이 두 사이의 적정 거리를 찾아내는 기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