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킹토킹' 느긋하게 일하고 칭찬받는 미국 사람
한국 사람의 몸속에는 거부할 수 없는 '빨리빨리'의 DNA가 흐른다. 세계 최강의 인터넷 속도를 만들고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동력이지만,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섞여 일할 때면 이런 성실함은 때로 오해의 소지가 된다.
두바이에서 승무원으로 일할 때도,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지금도 마주할 때마다 불편한 장면이 있다. 기내에 콜벨이 울리면 열 번 중 일곱 번은 한국인이 몸을 일으킨다. 부대에 환자가 밀려 있을 때, 대기 명단을 '쭉쭉' 빼내며 정체를 해결하는 것 역시 한국인 직원들이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도저히 참지 못하는 민족성 때문이다.
반면 외국인 동료들은 느긋하다. 내가 보기엔 느긋하다 못해 때로는 게으르다 싶을 정도였다. 복도에 환자가 줄을 서 있어도 아이를 데려온 부모에게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스몰토크를 건네고, 오늘 날씨가 어떤지 한참을 떠든다. 그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가끔 타들어 간다. 우리는 몸으로 일하고 있는데 저들은 느긋하게 말로만 일하는 것 같아 속이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돌아오곤 한다. 최선을 다해 대기 인원을 줄여놓은 한국인은 '불친절하다'는 피드백을 받고, 여유롭게 스몰토크를 즐긴 동료는 환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준 친절한 직원'으로 칭찬받는다. 효율을 중시하며 일한 입장에선 억울함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안엔 정서의 차이가 있다. 그들에게 서비스란 '속도'가 아니라 '연결'이다. 실제로 글로벌 서비스 지표에서도 서구권 소비자 10명 중 8명은 빠른 처리보다 직원의 공감 능력을 더 중요한 만족 요소로 꼽는다고 했다.
그들에게 스몰토크는 단순한 잡담이 아니라, 상대방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인하는 필수적인 '예의'였다. 사람들은 조금 기다릴지언정,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안부를 묻고 아이를 칭찬해 주는 그 다정함을 통해 자신이 존중받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 정중한 예의를 갖추는 시간이 나에겐 '한가로운 잡담'처럼 보였던 것이다.
결국 내 안의 '빨리빨리' DNA를 의식적으로 길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신속히 빼내는 것만이 효율이 아니라, 상대의 눈을 맞추며 그가 내 앞에 존재하는 한 사람임을 인정해 주는 과정. 그것은 낯선 문화권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한 생존 전략이자, 함께 일하는 이들과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다.
결국 저들이 원하는 건 완벽한 효율이 아니라, 자신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조금 기다리더라도 내 차례만큼은 온전히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그들의 정서를 이제는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