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직장인, 회사 이름을 빼고 나를 소개한다면

직함이 없는 나는 누구일까?

by 희원다움

말끝마다 "아우, 지겨워"라는 말을 달고 사는 동료가 있다. 출근과 동시에 퇴근을 꿈꾸는 그에게, 혹여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는지 물었다.


"일은 안 하고 싶죠. 먹고살라고 하는 거지. 돈만 많으면 좋아하는 운동이나 다니면서 살고 싶어요."


그의 대답을 들으며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일터가 그저 참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라면 이 얼마나 큰 낭비인가. 나는 일을 단순히 '돈벌이'로만 여기는 이 태도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돈을 받으니 시키는 대로 한다'는 생각에 갇히는 순간, 내 삶의 주도권은 고스란히 회사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주체성'을 선택한다. 나의 이 집착은 어린 시절의 결핍에서 시작됐다. 중요한 선택들을 타인이 결정해 버렸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 그때 느낀 무력감은 성인이 된 후에도 나를 따라다녔다.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내가 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바로 '직업 전환'이었다. 타인이 정해준 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직접 선택하고 도전하는 과정을 택했다. 그 길 위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실패를 맛보고, 다시 그것을 극복해 내는 성취를 반복하며 나는 비로소 주체성을 회복했다. 내 삶의 핸들을 쥐고 나아간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맛봤다.


하지만 주도권은 한 번 찾았다고 영원히 유지되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하기를 멈추고 다시 지시에만 몸을 맡기는 순간, 우리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일터에서 내 의지를 지워버리는 것. 그것은 내 인생의 주도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주체성을 쥘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지금 있는 자리를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잘하는지 '실험'하는 무대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지 못한다면, 환경을 바꾼다 해도 결국 똑같은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회사는 나를 써먹는 곳이 아니라, 내가 나를 증명해 내는 실험실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실험의 과정과 결과를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나 역시 기록하지 않았다면 10년을 일해도 남는 건 '미군 부대 간호사'라는 이력서 한 줄 뿐이었겠지만, 기록을 통해 나만의 쓸모를 차곡차곡 남기고 있다.


나는 예방접종실의 수많은 변수를 나만의 매뉴얼로 정리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장에서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법을 기록하며 익혔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복기하고 다음을 고민하는 시간들. 그렇게 쌓인 데이터는 낯선 상황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게 돕는 가장 믿음직한 기준이 되었다.


결국 기록은 나와 일이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오늘 누군가의 말에 내 감정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혹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어 무력했던 기분을 한 줄 적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당신이 무엇에 흔들리는지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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