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이 나에게 안 맞는다고 느낄 때

지금 하는 일이 자꾸 남의 옷처럼 느껴진다면

by 희원다움

“이 일이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난 늘 남의 옷을 입고 사는 느낌이야.”


점심시간, 동료가 눈물을 겨우 삼키며 내 사무실 문을 열었다. 평소 불평 한마디 없이 그저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조용한 사람 안에 이토록 오래된 고민이 쌓여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그 말이 내게도 너무 익숙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일이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요.”

코칭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다. 나 역시 그 말을 여러 번 해봤다. 그런데 몇 번의 커리어 전환을 거치고 보니, 일을 그만두고 싶어지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우리는 보통 다음 3가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이 일은 나랑 안 맞아"라며 한 마디로 퉁쳐버린다.


1. 업무 자체가 안 맞는가(흥미)

2. 조직의 문화가 안 맞는가(환경)

3. 일하는 방식이 안 맞는가(프로세스)


좋은 회사였지만, 나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던 대학 시절부터 코딩 수업은 내게 늘 외계어 같았다. 친구들은 “이거 재밌다”, “왜 이렇게 돌아가지?” 하며 흥미를 느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컴퓨터 언어가 궁금했던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업으로 삼았으니 결과는 뻔했다.


직무를 제외한 모든 조건은 만족스러웠다. 동료들도 합이 맞았고, 선배도 유능했으며, 회사 인지도나 처우 역시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계속 다녀야 할 이유가 충분한 곳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아무리 남들에게 좋아 보여도 매일 6시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버티는 건 정말 죽을 맛이었다. 결국 나는 2년 반을 꾸역꾸역 버티다 입사 동기들 중 가장 먼저 회사를 떠났다.


업무는 흥미로웠지만, 조직문화가 맞지 않았다

간호학은 내게 잘 맞는 편이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탐구하고, 모르는 것을 찾아가며 배우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다. 나는 흥미를 느끼는 일이라면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생각보다 잘 견디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간호사로서 첫 발령지였던 외과계 중환자실 업무는 흥미로왔다. 잘 배우고 익혀 전문간호사로 성장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병원 조직문화에 있었다.

나는 일할 때 서로 존중하고, 필요하면 돕고, 각자의 역할 안에서 책임 있게 움직이는 방식을 선호한다. 반면 그때의 조직은 일방적인 수직 구조로 부당한 처사를 당해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관리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묵살당했고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자신에게 잘 맞는 직무, 업무 방식이 있다.

지금 근무하는 예방접종실에 와서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할 때 잘 맞는 사람인지 조금 선명해졌다. 업무 자체는 여전히 흥미롭고 모르는 것을 찾아 배우는 과정도 재미있다. 하지만 더 중요했던 건 일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소그룹 팀 안에서 계속 함께 움직이는 것보다, 내가 맡은 영역을 책임지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에 더 잘 맞는 사람이다. 그래서 같은 간호사 업무라도 팀 간호를 할 때보다 예방접종실에서 일할 때 훨씬 에너지가 올라간다.

결국. 중요한 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일할 때 가장 잘 맞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지다. 그걸 모르면 다른 자리에 가서도 같은 고민을 반복하게 된다.


직무 심리학에서도 직무 적합성을 하나로 보지 않는다. 업무 자체의 흥미, 조직의 문화와 가치관, 그리고 일을 수행하는 방식까지 여러 요소가 함께 맞아야 비로소 '나에게 맞는 일'이라고 본다.


일이 안 맞는다고 느낄 때, 구분해야 할 것

1. 업무 자체가 안 맞는가: 내가 하는 일의 핵심 내용에 흥미가 있는가, 없는가

2. 조직 문화가 안 맞는가: 집단의 가치관과 소통 방식 안에서 내가 건강한가.

3. 일하는 방식이 안 맞는가: 나는 협업하며 빠르게 움직일 때 빛나는가, 혼자 책임질 때 몰입하는가.


이것들을 구분하지 못하면 직장을 바꿔도 같은 문제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실험

지금 하는 일이 나랑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의 업무를 단계별로 나눠 적어보자.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유독 기운이 빠지는지, 반대로 어느 지점에서는 덜 힘들거나 오히려 에너지가 올라가는지를 살펴보자.

그러면 내가 안 맞다고 느끼는 것이 정말 ‘일 전체’인지, 아니면 그 안의 특정 업무 방식이나 환경인지를 조금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커리어가 흔들릴 때 필요한 건, 당장 직장을 바꾸는 게 아니라 무엇이 안 맞는지 구분하는 것부터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