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에서 나만의 '밀도'를 만드는 법

일이 지겨워지는 이유

by 희원다움
더 이상 배울 게 없어요

작년에 들어온 신규 선생님 한 분이 얼마 전 퇴사를 했다.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더 이상 배울 것도, 커리어를 확장할 길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퇴사 후 미국으로 떠났다.


또 다른 동료는 출근하자마자 “지겨워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여기서는 이제 더 이상 배울 게 없어”라는 말을 참 자주 듣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예전에는 그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사람이었다.


반복되는 일을 하다 보면 금방 한계가 왔다. ‘더 배울 게 없네’라는 생각이 들면 나는 누구보다 빨리 마음을 정리했다. 그때는 그게 일이 나랑 안 맞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네 번의 커리어 전환을 겪고 나서야, 문제는 일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의 나는 일을 꽤 수동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시키는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할 뿐, 그 일을 더 깊이 이해하거나 다르게 시도해 보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 마음은 이미 붕 떠 있었고, 지금보다 더 나아 보이는 ‘다음 일’을 찾는 데만 익숙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이 지루해지는 이유를 ‘반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복 그 자체보다 '어떻게 반복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같은 일을 해도 누군가는 오래 버티고, 누군가는 금방 지친다. 그 차이는 업무의 종류가 아니라 그 일을 얼마나 다르게 보려고 했는지, 1%라도 더 나아지게 했는지에서 생긴다.

나는 지금 예방접종실에서 혼자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동료들 중에도 가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예방접종실은 그냥 주사만 주면 끝 아니야? 너무 단순하잖아.”


겉으로 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주사를 놓는 행위는 전체 프로세스의 마지막 5%에 불과하다. 그전에는 백신 수량을 매 파악하고, 유효기간을 관리하며, 환자가 지연 없이 접종받을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사전 준비를 끝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


어떤 이에게는 "That’s too easy"라고 불리는 단순 노동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끊임없이 확인하고 판단하며 최적의 시스템을 정리해 가는 과정이다.


일이 지루해지는 건 ‘배울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 일을 더 이상 깊게 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기준을 만들거나, 원리를 파고들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는 메뉴얼을 만들 수도 있다.


이제 나는 지루함이 올라온다고 해서 바로 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질문한다. “내가 이 일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하게 일을 반복만 하고 있는 건가?”

지루함을 느낄 때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건 이직이나 퇴사가 아니라 ‘일의 깊이'를 실험해 보는 것이다

기준 만들기: 지금의 일을 더 정확하게 수행할 나만의 매뉴얼을 만들어본다.

문제 해결: 반복되는 비효율을 줄일 방법을 찾아본다.

정리하기: 누군가에게 이 일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구조화해 본다.

이렇게 접근하면 일의 밀도가 달라진다. 단순해 보이던 일에도 겹겹이 층이 쌓이고 깊이가 생긴다.


오늘의 실험

요즘 유독 지루하게 느껴지는 업무 하나를 적어보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나만의 '기준'을 만들 수 있을까?

반복되는 비효율을 10%라도 줄일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이 일의 '왜'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정리되어 있는가?


지루함은 무조건 떠나야 한다는 경고가 아니라, 내 일을 더 깊게 보라는 '성장 신호'일 수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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