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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Jul 24. 2023

살아계실 때 자주 해야 하는 말, 함께 해야 하는 이유

살아계셔도 돌아가셨어도 아버지는 늘 낯설었다

일요일 아침, 해가 중천에 떠있는 시각, 느지막이 일어났다.  얼른 운동하려고 TV를 켰는데 '출발 비디오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운동하느라 대충 보고 있었는데 개봉 예정인 '이유 있다 <비밀의 언덕>'이라는 영화 리뷰를 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짧게 소개하자면, 영화의 주인공 초등학교 5학년 명은이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이상이 높은 아이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에 비해 초라한 부모님은 숨기고픈 부끄러운 존재였다. 영화의 배경인 90년대에는 학교에서 부모님의 학력과 직업을 조사했다. 어린 명은에게는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부모님을 숨기려 자신만의 가짜가족을 만들었다. 어린 명은의 성장통 보며 '가족은 무엇일까?'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가족 하면 나는 아빠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명은처럼 이상이 높고 욕심이 많았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아빠는 무능력하고 가족에게 빵점인 사람이었다. 내 기억 속 아빠는 늘 얼큰하게 술에 취해있거나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티브이만 보던 세상 무뚝뚝하던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왜 다른 아빠들처럼 다정하지 않을까? 왜 애를 넷씩이나 낳아놓고 저렇게 술만 마시고 다닐까? 나도 서울에서 더 나은 학원에 다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데 이 지긋지긋한 시골을 떠날 생각이 없을까?
-어린 나의 기억

나에게 한심한 어른이었지만 회사 부하직원들에 아빠는 직원들의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의리 있과장님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아빠는, 동료 대신 누명을 쓰고 회사를 나온, 누명이 벗겨져 복직을 권유받았지만 동료가 다칠까 봐 제안을 거절한 무책임한 가장이었다. 그때 나는 당신 자식 넷씩이나 있음에도 복직하지 않은 아빠를 용서할 수 없었다.


이런 아빠가 사업을 하면서 몸이 쇠약해지셨다. 큰 병은 없었지만 일할 때 말고는 그 좋아하던 술도 못 마시고 침대에 누워있기 일쑤였다. 젊을 땐 직원들 챙기느라 가족을 돌볼 여력이 없더니, 자기 몸관리도 못해 집에만 있는 아빠가 더 미웠다.


미워하는 마음만 가득했던 어느 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빠가 돌아가셨다. 쇠약해진 몸에 영양제나 맞으러 병원에 갔다, 영문도 모는 채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나서야 진짜 눈물을 흘다. 문득문득 생각나고 순간순간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어느덧 불혹이 넘어, 나 하나 먹고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느꼈을 때,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윗사람한테는 잘 보이려고 비벼대고, 아랫사람에게 못되게 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사를 마주했을 때, 아저씨들이 아빠를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게 되었다. 아빠 장례식에 왜 나보다 더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도.

이제는 아빠에게 묻고 싶다. '이렇게 정글 같은 직장에서 어떻게 아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냐고? 단 한순간도  어떤 유혹에 흔들림이 없었냐고?'


내일은 돌아가신 아빠 기일이다.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아 기억나는 추억도 없지만, 7월 25일 어느 무덥던 여름, 아빠가 계시던 중환자실의 차가웠던 공기는 아직도 소름 끼치게 기억난다. 시원한 강가의 바람을 좋아했던 아빠. 욕심 많은 내가 참 많이도 미워했던 아빠가 이제야 너무 보고 싶다.


아빠, 난 마흔이 넘으니 아빠가 다 이해가 되네..

아빠 혼자 곧은 마음 다 지켜내느라 힘들었을 텐데, 큰딸이 되어서 그것도 몰라보고 미안해. 아빠 나이가 되니 이제야 알겠더라. 아빠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미안해... 아빠

살아계실 때 한 번도 못해본 말이지만 지금 꼭 하고 싶네... 이게 뭐 그리 어려워 한 번도 못했나 몰라.
  아빠... 사랑해...
 아빠 딸로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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