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해에서 청주 동물원으로 옮겨간 사자 '바람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렇게 좁은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이 바람이 뿐만은 아니겠지만, 왜 유독 김해 동물원 우리 안에 있던 바람이 눈빛이 문득문득 떠오르던지.
우리안에 갇혀있던 모습
마침 청주 동물원 근처에 동생이 살고 있어 가서 바람 이가 잘 있는지 사진을 찍어달랬다 '미쳤다'며 단번에 거절당했다. 이 더위에 산 중턱에 위치한 동물원, 그중 가장 꼭대기에 바람이가 있다는 것이었다.작년 여름, 이보다 들 더울 때 갔는데도 힘들었단다. 오케이, 그렇다면 내가직접 가겠다 맘을 먹었다.
마음을 먹은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기회가 생겼다. 갑자기 고향인 여수에 가게 되어 올라오는 길에 겸사겸사 바람 이도 보고 동생 식구들도 만날 생각이었다.
청주 가는 날 역시, 35도가 넘고 습도가 높아 숨이 막히는 날씨였다. 가기 전까지 동생이 다시 생각해 보라며 만류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라고 하지 않던가? 50도가 넘는다는 두바이에서도 살아봤는데 아무리 더워봤자 그보다 더하겠냐 싶었다. 얼음물, 선글라스, 제일 큰 우산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동물원에 입장했다. 웬걸,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살았다
그토록 눈에 밟혔던 바람이의 배려인 것일까? 다행히 미친 무더위였지만 단비를 맞으며 바람 이를 만날 수 있었다. 청주에도착해 감염병 검사를 받고 원래 동물원에 거주하던 다른 사자들(도도, 먹보)과 합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에서 좀 먼 곳에서 적응 중이었다.
멀리 우리 밖에서 본 바람이는 더위에 지쳤는지 자고 있었다. 카메라 줌을 당겨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워 자던 바람이가 폴딱 뒤집더니 카메라를 응시하며 발을 까딱거렸다. 발랄해진 그 모습이 얼마나 울컥하고 다행이던지.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품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강아지가 아니면 솔직히 무섭다. 그런데 바람이가 계속 떠오른 이유는 돌아가신 아빠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번 고향방문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의식이 없어지기 전,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13년 전, 함께 했던 동생이 전해준 상황에 의해, 의식이 있는 모습으로 몸 상태가 안 좋아 중환자실로 배정을 받았고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셨다는 게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런데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들어보니 중환자실에 있기에 의식이 너무 또렷했던 아빠는 침대 난간을 흔들며 이곳에서 꺼내달라고 애원했다. 동생이 의사 선생님께 말해보겠다고 이야기했던 당일, 강가에 부는 바람을 좋아했던 아빠는 삶의 끈을 놓아버리셨다.
어른이 되어 고향집을 갈 때마다 퇴근 한 아빠는 근처 강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점심도 혼자 나와 그 벤치에서 바람을 느끼며 먹는 것을 참 좋아하셨다. 그래서 나는 시원한 바람이 불면 꼭 아빠 생각이 났다.
빗방울을 맞으며 카메라를 응시하던 바람이를 보며 깨달았다. 우리 안에 갇혔던 바람이 눈빛이 13년 전 아빠의 모습이었을 것만 같았던 거다. 그래서 동물을 무서워하는 내가, 그렇게 만나고 싶었구나. '우리 아빠 같았던 바람이어서',편안해진 바람이 모습에 '아빠도 잘 계시는구나' 안심이 되어서..
그런데... 바람이를 가뒀던 김해의 부경 동물원에서 믿기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람이가 갇혔던 그 우리에 바람이 대신 딸이 갇혀있다는 것. 인간은 대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