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설마 설마, 진짜 그날이 왔다. 초등학교 때 어항에 금붕어랑 거북이를 키워본 경험을 제외하면 40년이 도록 개, 고양이를 키워볼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키우기는커녕 특별히 물린 적도 없는데 저 멀리서 조그만 강아지가 오는 것만 봐도 에둘러 돌아갈 정도로 무서워했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는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던 때였다. 그런데 우리 집은 큰아들이었던 아버지때문에 여동생 둘에 조카뻘 되는 막내 남동생까지 생긴 터라 터울이 많은 동생들을 챙기기도 바빴다.
어린 시절, 자기 방을 가진 외동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동생이 많아 부러워했는데 정작 나는 외로움마저 느껴보고 싶을 정도로 혼자이고 싶었다. 이런 연유인지 어른이 되어서 타향살이를 해도 딱히 향수병에 걸리거나 외롭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 대학 졸업 후부터 혼자 자취를 했으니 20년 동안 혈혈단신, 별 탈 없이 살아왔는데 갑자기 애완묘가 생겨버렸다.
이름은 양말이, 몸통은 줄무늬인데 네 발끝은 하얀 양말을 신은 것 같아 부르는 이름이다. 같이 살기 시작한 지 3일째 됐는데 얼굴은 횟수로 2번 시간으로는 30초도 못 봤다. 유난히 낯을 가려 방 안에 있는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더니 그 안에 있는 담요 밑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오자마자 가득 담아준 사료는 입도 안 대고 있다.
아무리 남의 일에 무관심한 나이지만 생명체가 같이 사는데 신경이 안 쓰일 리 없었다. 출근 전에 인사하고 퇴근하면 제일 먼저 찾아보는데 인기척이 들리면 잽싸게 숨는가 보다. 눈에 띄는 곳에서는 안 보이는데 찾아보면, 자기 집에 있는 이불 밑을 파고들어 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거기다, 생전 처음 느끼는 고양이 털에 민감한 피부가 반응을 일으켰다. 출근해서부터 목이 간질거려 긁었더니 화상 입은 것처럼 붉게 올라왔다. 집에 오니 눈도 근지럽고 목도 칼칼한 게 고양이 털 알레르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