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없던 시절 첫 직장을 퇴사하던 때가 생각난다. 간호사인 나는 지방의 모 대학병원을 다녔다. 간호대를 갓 졸업한 따끈한 간호사면허증을 받았을 때이니 간호사에 대한 자부심도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그리고 들어가기 힘들다는 대학병원에 합격을 했으니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물론 대학병원 간호사의 엄청난 업무 강도로 금세 힘은 빠졌지만.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 사람마다 찾아오는데 결혼이 나에게는 그랬다. 천안에 사는데 청주로 시집을 왔다. 원거리라는 이유로 퇴사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무수히 많은 고민 끝에 마무리를 결정하고 수선생님에게 퇴사통보를 했다. 그 달 말까지만 근무하기로 했다. 그 달 말까지 근무한다고 했으니 마지막까지 열심히 다니긴 했다. 약간 단팥 빠진 호빵처럼 일을 했다.
글쎄 쓰리오프를 쉬고 온 후 다시 출근을 하니 신규간호사가 떡하니 출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근무표를 자세히 보니 정확히 내가 퇴사를 이야기한 그다음 날에 신규가 출근을 했다. 이미 트레이닝 중이란다.
너무나 순진했던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첫 직장에 최선을 다 하려고 했으나 순간 기운이 쪼옥 빠져버렸다. 나 아직 안 그만뒀는데. 아직 다니고 있는데 신규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직장을 제2의 가족 같은 곳으로 여겼던 것이다. 허나 이곳은 특수 공동체로 근로의 대가로 급여를 받기로 약속한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그만두면 신규를 뽑아서 훈련시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절차이다. 나 또한 그랬을 것이다. 서운할 것 하나도 없는 것이다. 나는 조직 내에서 부속품 같은 존재이다. 언제든 교체될 수 있음을 안다. 직장에서 모두와 잘 지낼 필요는 없다. 그저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고 급여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한다. 이것은 급여를 받는 프로들의 기본자세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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