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전화를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사는 것은 왜 이리도 팍팍한 건지 하루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정말 중요한 약속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소소한 것들은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나에게 소소한 것이라서 자주 넘어가는 것은 바로 지인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것이겠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다음에 다음에로 계속 미루더니 끝내는 내가 전화를 받는 꼴이라니. 중요한 것을 지나치고, 소홀히 한 대가로 방금 전 전화를 받았다.
친정아버지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다. 반갑다기보다는 다급하지만 차분하려고 하는 목소리. 3교대 근무를 하는 딸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본론은 갑작스럽게 내일 만나자는 전화다. 너무 바쁘면 안 와도 된다는 말과 함께. 내용인즉슨 외할아버지의 돌아가심으로 장례식장에서 만나자는 부고전화다.
잊고 지냈었다. 나의 뿌리를. 사람은 누구에게나 뿌리가 있다. 나의 가장 가까운 뿌리는 엄마, 아빠이다. 그다음 뿌리는 조부모일 터인데 이제는 외할머니만이 남아계신다.
내가 외갓집에 전화를 한 지가 어언 10년은 된 것 같다. 무심한 손녀딸 같으니라고. 친정과 시댁을 오갈 뿐이지만, 결혼 후에는 다섯 번 정도 외갓집에 간 것 같다. 결혼하고서, 결혼 후 두 어번, 첫째를 낳고서, 둘째를 낳고서. 참 기가 막히다. 외갓집에 간 횟수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만큼 적게 갔다는 거다. 친정부모님 댁에 간 횟수를 세라면 기억이 안 나서 그 수를 셀 수가 없었을 터인데.
내 나이 마흔다섯에 아직까지 나의 외조부모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나는 그 축복을 그냥 흘려보내는 아쉬움으로 갖게 되었다. 가끔 친정엄마에게 소식을 전해 들을 뿐이었다.
다행히 나는 내일 오프이다. 아이들은 방학이고, 남편은 휴가를 받아놓은 상태다. 너무 늦은 시간이니 내일 오라는 친정아버지의 당부대로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출발할 것이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갈게요. 나의 뿌리에게 인사를 하러 가요. 내가 뿌린 뿌리를 데리고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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