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명환 작가의 강연에서 들은 말이 있다. 사람은 남을 도울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혼자 살지 않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렇다는데 내가 남을 많이 도운 적이 있나 생각해 보는데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는 사실에 조금 씁쓸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제 있었던 일이 하나 떠오른다는 거다.
어제 간호학원에 강의가 있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다 보니 열정적으로 내 안의 것들을 다 꺼내어 강의를 한다. 50분 동안 수업을 하고 10분간 쉬는 시간을 가진다. 이렇게 4시간을 강의하면 오늘의 수업은 끝이 난다.
사람 좋아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 10분을 그냥 있을 리가 없다. 간호학원 실장님과 인간적으로 잘 지내는 중인데 오늘의 화두는 겨울방학 동안 아이에게 어떤 공부를 시킬까이다. 실장님의 아이는 이제 초3에 올라가는 남자아이다. 나는 나름 중2, 초6이 올라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선배맘이다.
육아라는 것이 정말 신경을 쓰자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다. 아이에게 더 잘해주려고 하면 끝이 없다. 특히 첫 아이를 키울 때는 얼마나 정성을 다 했는지 모른다. 물론 둘째 아이를 키울 때 정성을 덜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둘째 아이를 키울 때는 수월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를 키울 때 했었던 시행착오를 둘째에게는 적용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번 겨울방학에는 무엇을 시켜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10분의 쉬는 시간은 짧았기에 10분 이야기하고, 강의 들어가고 또 10분 이야기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는데 시간의 끊김은 우리의 대화를 끊어놓지는 못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네 아이들은 자기주도 학습은커녕 주어진 과제를 딱 하라는 대로만 해내고 있다. 시간이 많은 겨울방학이니 조금만 더 해도 될지 언정 아이들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 일들이 지금 현재 나에게 닥치면 눈앞이 깜깜할 때가 있는 법이다. 나라고 안 그랬겠나. 나는 지금이 눈앞이 깜깜하다. 중2 녀석이 곰이 된 지금이 너무 적응이 안 된다. 어쩜 그리 잠만 자는지 겨울잠을 자는 것이 아이라고 할 수 없다. 먹고 자고 주어진 집공부를 하라는 만큼만 딱 하고, 근근이 하루에 하나씩 수학 학원과 국어학원만 가고 있다. 학군지의 아이들은 텐투텐이라는데 우리는 낮잠이 텐투텐인 듯싶다.
내가 다시 초3엄마가 된다면 나는 엄마표 영어에 조금 더 힘을 줄 것이고, 한글책을 더 읽힐 것이다. 안 읽는다면 목이 터져라 읽어주겠지. 그리고 수학은 천천히 나갈 것 같다. 너무 심한 선행은 어차피 받아들이지를 못 할 터이니.
집집마다 사정이 다 다르고 기준이 다르다. 우리는 둘 다 워킹맘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하면서 아이의 공부까지 다 잘 봐주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니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방법은 한 과목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었다. 일단 나는 일을 열심히 하되 시간을 만들어서 엄마표 영어를 하는데 집중을 했다. 아이가 한 과목을 월등히 잘하면 자존감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초등까지는 우리 아이들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만큼 영어를 잘했다. 굳이 단어를 외우거나 시험을 보지 않는다. 그저 아주 쉬운 영어 원서를 꾸준히 읽어나가고 있으니. 영어 한 과목을 월등히 잘하니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높아졌다. 나는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니 다른 과목도 아직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더니 전 과목의 성적이 상향평준화가 되어 버린다. 공부방 선생님처럼 전 과목을 다 세세히 봐주려고 하면 자기주도학습은 끝내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엄마가 봐주면서 공부하는 습관을 잡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생각을 해보라. 일하는 엄마에게는 전 과목을 다 잘 봐주고 싶은 욕구는 있겠지만 그것을 전부 실행할 수 있는 시간은 결코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둘 다 잘 해내려고 한다면 나는 이미 번아웃이 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한 두 과목을 집중적으로 봐주고 나머지는 스스로 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아이가 커가면서 학원을 다니게 된다면 이제 학원선생님과 이인삼각으로 아이 공부를 봐주는 날이 올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더니 나는 웬만한 육아서는 거의 다 본 상태이고, 요즘은 고등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고등생활에 대한 책을 거의 다 사서 보는 중이다. 조금 이를지언정 안개 낀 것 같은 앞으로의 아이의 공부길에, 엄마가 가는 길을 알고 있다면 조금은 덜 당황할 것 같다.
초등 육아서 중 일부를 실장님에게 선물로 주려고 한다. 사람은 남을 도울 때 행복하다더니 그런 것 같다. 내 돈 주고 산 책을 공짜로 주는 건데 내가 더 기쁘다.
겨울방학의 중요성을 나는 아는데 막상 아이들 본인은 그저 놀고만 싶어 한다. 티끌을 모으면 태산이 된다는 말을 믿고 있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면 50일의 방학이 지난 후에는 뭐라도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매일 운동을 했더니 1.5kg의 근육이 생긴 나를 보고 놀란 경험이 있듯이. 꾸준함이 가진 힘을 믿고 오늘도 힘을 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