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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Dec 04. 2017

산에서의 고독은 나 자신과 마주할 시간을 준다

북한산 숨은 벽에 숨겨둔 내 자아를 찾는다

http://cafe.naver.com/hongikgaepo




ㅡ밤골 매표소, 효자 2통, 사기막공원, 숨은 벽, 인수봉, 백운대, 백운산장, 도선사ㅡ




비 내린 아침이다. 

빗소리가 요란스러워 마치 '오늘은 늦게 움직여도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자장가 같다. 

덕분에 잠은 편안하게 잤다. 

서울의 산을 덜 돌고 지방 원정 산행을 다니는 것은 첫째, 노후를 위해 마실 다닐 아름다운 곳을 아껴놓는 이유요.. 둘째, 조금이라도 삶의 근거지에서 떨어져 다른 공기를 마시기 위함인데 오늘은 비가 오는 바람에 이 찬 공기를 마시며 안개에 젖어있는 그리운 산이 떠올라 어쩔 수 없이 아끼고 아껴 놓았던 비경을 찾아간다. 

보통 산이라는 친구는 그 팔색조 같은 모습을 오르고 내리는 방향과 계절마다 그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에 그 아름다움을 느끼고 기억할 때마다 그 황홀함에 혼자 미소를 짓게도 한다.  


 421번 버스를 타고 '서울역환승센터'에 가서 6번 승강장에서 704번 버스를 타고 효자 2통으로 간다. 

거기서부터 강북 시내버스투어가 이루어지는데 '남대문시장'에서 '조계사', '광화문', '서대문 안산'을 지나 '홍제동'에서 '불광동', '진관사', '한옥마을' 지나는 비에 씻긴 말끔한 서울 강북 버스투어를 마치고 나면 '효자 2통 밤골'에서 시작되는 산행이 시작된다. 

사실 '숨은 벽'은 4년 전 산이란 곳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힘든 아픔을 숨겨 놓았던 곳이다. 

그 아픔이 발효되어 무언가가 되었길 바라며 산에 깔린 안개를 헤치며 낙엽길을 오른다




입구에 아저씨 한분에게 길을 물어보다 합류한다 g라고 명칭하고 같이 오른다. 

'밤골'에서 시작하는 그 길은 '인수봉 방향(숨은 벽)'으로 오른다. 

독일에서 오신 g는 15년간 베를린에서 살다 오셨단다. 

이것저것 내가 알고 있는 독일의 딱딱한 정서와 유럽에서의 존재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숨이 차서 잠깐 침묵이 흐른다. 

오늘은 길에 사람이 귀하다. 

인기척이 들려 다가가 보니 부부가 식사 중이신데 길을 여쭤뵈다가 귤과 진한 생강차를 나눠주신다. 

가진 게 많지 않아 초코파이를 나눠드리고 다시 길에 오른다. 

바위를 타고 오르다가 오전까지 온 비에 미끄러지는 듯해서 조심히 바위 옆에 흙과 뿌리를 잡고 오른다. 

이 길은 사실 어디를 거치고 들린다기보다 그냥 4킬로가 넘는 긴 외길이다. 

일부러인지 모르겠지만 정비도 안 되어 있고, '릿지 산행'을 하시는 분들껜 무척 흥미로운 길이다. 

'해골바위'라 명칭 하는 바위가 내려다보이는 지점에서 '숨은 벽'을 바라보니 그 날카로움과 아름다움이 4년 전 처음 마주했을 때와 다름이 없다.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g와 함께 식사를 한다. 

g가 가져온 술을 한잔 받고는 20여 년 전 지리산에서 죽을 뻔한 기억이 떠올랐지만 와 봤던 길이고 하니 괜찮을 듯하여 일 잔 받고 나니 이 잔이 채워져 있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괜찮겠지 하며 받아놓고 숨은 벽을 먹으로 풀어 나간다. 

g는 그곳에 모이신 분 중 숨은 벽으로 오르시는 분과 합류하신다. 

모두 가버리고 나시니 인적이 끊어졌다. 

나 혼자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먹을 풀어내다 정신이 버쩍 든다. 

아직 남아있는 길이 창창한데 시간이 3시 40분이다. 

산에서 겨울은 5시면 어두워 지기에 서둘러 올라간다. 












점점 오를수록 눈과 얼음이 많아져 미끄럽다.  

오전에 온 비가 산 위에선 얼어서 빙판길이 된듯하다. 

바위를 타고 가다가 몇 번 미끄러져 우회길을 찾는다. 초소 같은 곳이 있는데 시간이 늦었는지 사람이 없다. 

바위를 타고 가는 길이 상당히 위험하다고 되어 있어 우회로로 돌아가니 길들이 바위 절벽에서 끊어져 있어 위험하다. 간신히 나무를 타고 미끄러운 이끼를 밟고 연결해 가다 돌아갈까 생각이 든다. 

어떻게 우회로가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길 표시도 없고 눈과 얼음과 고드름과 이끼와 알 수 없는 시간으로 수북한 바위를 타고 올라서다 커다란 동굴이 나온다. 그 동굴을 넘어갈 수 없어 이대로 이 동굴에서 하룻밤을 세우고 아침에 움직여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옆으로 나무를 타고 건너는데 앞이 바위 덩어리로 막혔다. 

다시 왔던 길로 가다 올라서니 다행히 동굴 위쪽이다. 

안개가 그득하고 어둑해지는데 공포가 음습한다. 전화를 찾아 걸렸는데 신호가 잘 잡히지 않는다. 

간신히 지도로 검색하니 내가 있는 위치가 '인수봉'이라고만 나오고 거기서 나가는 길은 이 세상 어느 데이터에도 없다. 두려움에 소리도 쳐보지만 아무도 없다. '인수봉'이 보이니 무조건 그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눈 사이에 무언가 빨간 게 보인다. 

북한 삐라 같은데 인적과 상관없는 물건이라 이내 실망한다.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라도 있다면 그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올라갈 텐데....

20여 년 전 지리산에서 절벽길을 내려가며 미끄러져 가다 이렇게 죽음과 가까워지나 싶다 삶의 꼬리를 붙잡고 악착같이 타고 올라왔던 기억을 떠올리고 그 순간 공포를 잘라내고 오르기 시작한다.  

오분쯤 갔을까? 안보이던 발자국 하나가 위쪽 방향으로 나 있다. 

기쁨의 순간도 잠시 그 발자국도 나와 같이 길을 잃은 거라면... 하지만 판단하기엔 너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꾸 어두워진다. 살기 위해선 올라가야 한다. 

이십여분 힘차게 올라서니 '인수봉' 옆의 골짜기 정상에 간신히 올라선다. 

아, 여기는 사람의 흔적이 있다. 

암벽등반을 위한 신고함도 있고 인적은 있는데 길이 없다. 방향 이정표도 없다. 단지 사망사고 발생지점이란 표지판만 있을 뿐 방향을 알 수가 없다. 











여기가 '인수봉'이라면 분명 20분 거리에 산장이 있을 텐데 하산을 위한 방향을 알 수가 없다.

핸드폰을 보니 신호가 잡힌다. 

간신히 북한산에서 암벽 연습을 하던 h가 생각난다. 

전화를 거니 오늘은 비가 와서 산에 가지 않았단다. h는 산을 좋아하긴 하지만 길을 잘 알지 못해 앞에 지형지물을 찍어 h의 지인에게 전송한다. 

이미 산은 어둠 속에 파묻혔고 빙판 바위들에 갇혀 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자꾸 끊어지는 전화를 하고 받으며 바위를 타고 올라가 호랑이굴이라 명하는 곳 앞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그 길을 '구조대길'이라고 한단다. 

이미 어둠이 내려 길은 희미한데 오히려 어두워지니 저 멀리 불빛이 잘 보인다. 

불빛을 따라 찾아가니 불상이 있고 촛불을 밝혀 놓았다. 사람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니 마음이 놓인다. 

멈춰있던 피가 도는 것 같다. 

돌계단으로 따라가니 이상한 구조의 암자가 있고 문을 열고 내려가서 거기 문을 두드리니 사람이 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분 말로는 '백운산장'이 바로 밑에 있단다. '백운산장'으로 내려오니 문이 잠겨 있다. 

전에 여기에서 하산하던 기억이 있어 스틱을 펴고 눈에 불을 껴고 하산하기 시작한다. 이제 살았다. 

길을 내려오며 다시 '인수봉'을 쳐다본다. 

어둠과 안개에 싸여 을씨년스럽다. 

아름답기만 한 산이 아니라 공포스럽기도 한 산이다. 

마치 '니까짓 게 감히..'하고 노여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섭기도 해 뒤를 보지 않고 내려간다. 

이쪽 길은 음지여서 바닥이 얼음바닥이다. 엉덩방아를 찧고 그냥 그대로 누워버린다. 이까짓 엉덩방아는 기쁘게 찧어줄 수 있다. 계단을 내려가다 산을 타고 골짜기를 넘으니 반 정도 온 것 같다. 

이제부터 수월한 길이다. 

걱정 끼친 h와 지인에게 연락드리고, 내려가는데 동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먹거리 쇼핑하는데 사줄까?' 하는 내용이다. 

동생에게 각각 하나씩 모두 다 사주라고 연락한다

'죽음으로부터 살아왔는데 그깟 먹을 것 다 먹어주겠어' 하는 맘으로.... 

계단을 찬찬히 내려오니 점점 더 수월한 길을 거쳐 불빛이 보이고 '도선사' 그 아름다운 절이 보인다. 

어두워서 보이진 않지만 그 아름다움은 마음으로 알 수 있다.  

거기서부턴 데크와 아스팔트라 마음을 놓고 한쪽에 앉아 뜨거운 물에 커피를 마신다. 

긴장했다가 긴장이 풀어지니 몸에 근육이 다 녹아 버리는 것 같아 힘들다. 

스틱을 정리해서 다시 40여분 내려가며 공포를 통해 나와 마주했던 음습한 산행은 144번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잠들어 버린다. 




2017.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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