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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Oct 05. 2015

'황학동 벼룩 시장',, 오래된 것들의 천국​

'프랑스 방브'에서 느꼈던 오래된 것들의 쓸쓸한 친근감, 여기서도 느끼다

    

오늘 있던 약속이 깨지면서 멀리 어딘가로 가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모자를 하나 살까 하던 차에 전에 몇 번 가봤던 '황학동 벼룩 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무언가 오래된 것들이 잔뜩 있는 그래서 정감이 가는 그 곳에서 나는 오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외국에서의 벼룩시장은 프랑스의 ‘방브 벼룩시장‘이 제일 많이 생각난다.

독일군의 군수물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 독일군 외투와 남방과 군수물품들 뿐 아니라 그림이나 골동품 등 다른 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주말마다 간식거리들과 함께 나오는 광대한 시장이다. 15년 전 그 시장에서 샀던 옷들은 아직도 장롱 한편에 걸어져 있으니 괜찮은 쇼핑을 한 건 틀림없다.     


'동묘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역에  내리자마자부터 사람들이 넘쳐났다.

사람들의 파도에 실려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다 보니 그곳이 '황학동 벼룩시장'이었다.

사람들은 연신 물건들을 흥정하고 있었고, 주인들은 물건들을 당당하게 팔고 있었다.

간혹 깎아 달라고 돈을 놓고 가면 내가 거지냐고 안 판다며 물건을 걷어가는 아저씨도 있었다.

직진해서 가면서 오른쪽으로 꺾는 곳에 위치한 공산품 먹거리를 파는 가게는 유통기한이 급박해져서 팔지 못하는 물건들을 팔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 앞을 지나 갈 수 없었다. 땅콩바가 무척 저렴하게 나와 있어  나도 두 상자 사서 가방에 넣었다.

오른쪽 길로 가니 스포츠 등산용품도 많이 나와 있었다,

옷을 사려 던 건 아닌데 걸려있는 옷 중에서 꽤나 괜찮은 마의가 있어 사려고 마음을 먹고 입어본다.

이런 보기보다 많이 작다... 팔이 짧네..

사이즈 때문에 눈만 꿈뻑이다 나왔다.

같은 물건도 어떤 사람에겐 횡재고 어떤 사람에겐 무용지물이니 횡재를 얻는 자는 보람이 있겠구나 생각한다.


찾던 모자는 잘 안 보이고, 골목에서 80리터짜리 백패킹 가방이 나와 있다.

쳐다만 보는데 아저씨가 가방을 내려서 보여주신다.

가방이 탐나긴 하는데 4만원 붙어 있던 가방이 3만원에서 1만원으로 쭉 내려간다.(여기가 중국도 아니고...)

아저씨가 빨리 처분하고 싶었나 본데 많이 탐나긴 하지만 집에 놀려 놀 수 없어서 그냥 조용히 내려놓고 왔다. 아저씨는 역시나 역정을 내시며 ‘아저씨 같은 사람에겐 안  팔아’라고 말로 소금을 뿌리셨고, ‘아저씨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맘이 풀리나 보다.‘ 생각하며 조용히 골목을 빠져 나온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현 대통령의 젊었을 적 사진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파는 할아버님들이 부적처럼 모시는 것 같기도 하고 사는 할아버님도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시절에 어른이 아니었으므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고생하신 분들도 있지만 좋은 시절로 기억하고 싶은 분들도 있나 보다. 기억이란 좋은 것들만 기억하고 싶어 하니 말이다.    

길은 길게 이어져 있다가 새로 지어진 건물들에서 멈춘다. 그 끝자락의 상인들 이야기가 그쪽도 분위기가 생기려는데 단속반들이 막는단다. 길은 생기다가도 막히면 다른 길들이 생기고 그렇게 길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나 보다.

아래쪽 골목으로 내려가려 '동묘' 앞으로 돌아간다.

동묘 앞에는 항상 개미들이 큰 먹거리를 해체해 먹는 것처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옷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좋은 옷 찾으려고 옷들을 헤치고 있다. 모두들 그 수고비가 나오길 빌면서 동묘에서 눈을 잠시 쉬었다가 앞길로 다시 내려간다. 길이 이렇게 길게 나 있었던가? 싶은데 그 길은 '풍물시장'으로 가는 길까지 나 있었다. 거기에는 과거 청계천 가게에서 장사하시던 분들도 계시고, 길에서 노점으로 하시던 분들도 계시는데 사람들이 길가보다 많지 않아 보였다.

한쪽 편으로 옛날 이발소와 수선점등 테마를 만들어 꾸며놓아 들리기엔 깔끔하지만 사람들이 이곳까지 북적거리지 않는 건 황학동 메인에서 거리가 있거나 상품들의 구매 매력이 떨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밖으로 나오니 길이 점점 어두워진다.

‘내 가게에서 장사하는데 뭔 상관이야‘    

한쪽에서 싸움이 났다. 아줌마가 자기 가게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데 상인 연합회일지 동네 깡패일지 모르는 곳의 사람들이랑 실랑이가 붙고 사람들은 몰려들기  시작했다.

싸움은 아줌마의 기에 눌린 아저씨들의 완패인  듯해서 조용히 어두워지는 길을 나섰다.

이제 6시가 넘으면 어둠이 찾아오는데 계절은 그렇게 차별성을 두는가 보다.

골목골목의 실루엣이 아름답다.    


나는 또 지구 여기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구나     

201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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