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고 싶은 사랑의 형태는 뭘까

... 그리고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by 땐씽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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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이별에 있어 각자의 사정과 형태는 다르지만,

또 이별은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져도 슬픈 과정이지만

관계가 조금만 틀어져도 과하게 불안해지는 사람이 있다.

오늘은 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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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


나는 관계에서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대상이라고 생각했다(feat. 명백한 착각).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나를 궁금해주는 것,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이 사람은 무엇을 하려나 내가 방해가 되진 않을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친밀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


그러나 이게 그렇게 어려운 거라니.

이렇게 해주는 상대를 만나도 맘 한구석이 헛헛했고

그 관심이 조금이라도 거둬질라 치면 급히 불안해지며 세상이 무너진 듯 잠시 호흡을 멈추곤 했다.

그리고 그 불안을 발판 삼아 꼭 무언가를 이루어내면서 오히려 커리어적으로는 발전해 오기를 반복해 왔다는 게 재미난 지점이다.


상대를 진정 아끼기에 잃기가 힘든 걸까?

수십 번 자문을 해보아도 대답은 아니다였는데,

이 부분이 늘 핵심적인 의문이었다.

나는 나르시스틱 한 인간인가.

상대를 그저 내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일까.

나는 왜 이런 관계를 되풀이하는가.

헤어지기 위해 만나냐는 친구들의 농담에

어 진짜 그런가. 싶기도 했다.


최근, 크게 아파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연인이라는 존재는 4시간 거리에 있기도 하고,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직업 특성상 자주 와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말에, 괜찮았다(착각 part 1).

연인보다 더 멀리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당연히 알리지 않았다.

알려봤자 걱정만 끼치고, 어차피 간호병동이니 간병인을 따로 쓸 필요가 없었다.

역시 돈을 많이 벌어두었더니 병원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실비가 최고다라고 자위하며

병원을 찾아주는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병원생활을 마쳤다.


근 한 달간의 병원 생활동안 가족은 연락이 없었다.

내가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았다(착각 part 2).

어느 날부터 연인에게 설움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주리라 기대했던 사람이 원하는 만큼의 관심을 주지 않을 때 더욱 서글퍼진다고 했던가.

내 연인은 나를 (내가 원하는 만큼) 챙겨주리라 기대했으리라.


결국 연인과 크게 다투고 난 후 혼자 서러워 눈물을 흘리는 미친 셀프신파를 찍던 중 문득 떠오른 생각들.


내가 바라는 관계의 형태는 무엇일까.

이건 어디서 온 걸까.

왜 나는 병원 생활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병실 옆 칸의 가족들의 간호를 멍하게 바라보다 커튼을 칠 때 나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그러다 슬프게도 깨닫고 말았다.


사실, 아프다고 이것도 해주라 저것도 해주라 편하게 치댈 수 있는 가족의 간호를 바라고 있었구나.

이 날은 오늘 뭐 했냐 잘 지내냐

이사하고 집은 무섭지 않냐

외국생활이 힘들지는 않냐

이런 질문 한번 받아보지 못한 것이

나에게는 결핍이 되었구나.


어렸을 때부터 유독 무엇이든 혼자서 잘해왔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부모님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터였다.

나에게 거는 기대는 과했고 난 그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했다.

걱정을 끼치는 아이면 안되었던 것 같다.

아프다는 이야기도 하기가 어려웠으니까.

정말 어릴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터울이 많이 나는 형제가 크게 아플 때 엄마가 울고 화내며 무섭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던 그때부터였을까.

부부사이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소재로 나의 성취가 사용되었기 때문일까.

나 때문에 죽지도 이혼하지도 않았다는 부모님의 말들 때문일까.

백점을 맞지 못했을 때의 표정과, 전국대회입상이 확정되었을 때의 그들의 표정의 차이를 너무나 확연히 알아차릴 수 있었던 발달된 눈치 때문이었을까.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오랜 기간 독립해서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까.


잘하거나 기쁜 일 이외에는 집에 전달하지 않았다.

그들 살기도 힘들어 보였다. 아버지의 실직, 아픈 형제, 너무나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각자 나에게 연락해서 힘들다고 토로해도 내가 그래도 제일 편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괜찮았다. 그러니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가끔 사무치게 힘들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도 혼자 잘 버텼다. 그때마다 일이 있었고 친구도 있었다. 가끔 집에서 혼자 울거나 운전하면서 크게 음악을 틀고 멍 때리는 것으로 그날을 넘겼다.

그러기에

오늘 어땠어? 하고 물어봐주는 상상의 대상을 찾아 헤매었다. 오늘 좀 힘들었어하고 말없이 기대어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을 그토록 허덕이며 찾아다녔으나 여의치 않았다.


자잘한 내 일상에 간섭이 없는 것은 물론,

학위, 유학, 파혼 등 큼지막한 사건들에도

한마디 의견제시 없이 그의 결정을 따라주던 부모님의 양육형태.

이는 주체적인 나로 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음은 분명하다.

또 매우 유복하지는 않았으나 경제적으로 나를 지원해 주기 위한 부모님의 희생은 분명 감사한 지점이며

그들 나름의 애정이었음을 확신한다.


그럼에도 정서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뚫려버린 한 편의 결핍구멍으로 바람이 새고 있었다.

그동안 맺어온 연인관계에서 나는 문제없다고 여기던 모든 순간에 그 바람은 잔잔히 구멍을 넓혀가며 새어왔을 터였다.


연인관계 이외의 모든 분야에서 괜찮았다.

그래서 점점 강해지는 바람을, 넓어지는 구멍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결국 큰 깨달음이라는 또 하나의 성취를 해낸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간의 해답을 찾은 것 같아 조금 개운하기도 하다.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토록 오래 내가 받고 싶었던 건

결국 엄마 아빠의 소소한 관심이었어.

오늘 어땠냐고 물어봐주고, 궁금해주고,

또 내가 설사 힘들어해서 좀 징징댄다고 해서 그들이 무너지듯이 울거나 화내거나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다면. 그래서 내가 편하게 힘들다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그랬더라면.


내가 엉뚱한 곳에서 관심을 바라는 게 덜했겠구나.

그 나름대로 나를 사랑했던 상대에게 혼자 비참함을 느끼며 서럽지 않을 수 있었겠구나.

건강하지 않은 관계가 확실한데도 나를 찾아준다는 것에목을 메며 불안해하지 않았겠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 연로해지신 부모님의 행동을 바꾸려하거나 원망하지는 않으려 한다.

알아차렸다고 해서 헛헛한 구멍이 그리 빨리 메워질 것 같지는 않다. 새던 바람도 갑자기 멈출 것 같진 않다.


다만

나에게 칭칭 얽혀있던 정체 모를 목마름의 출처를 알았으니, 앞으로 신파는 좀 덜 찍겠구나,

내 이름 불러주기만 하면 정신못차리고 달려가지 않고

내가 연인에게 원하는 것으로부터

부모님에게서 받고 싶었던 관심을 분리시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자체에 집중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살포시 내려앉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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