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충이용지 혹불영
텅 비어있으나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다.
층층시하 고모 넷을 둔 장남과 결혼한 엄마는 줄줄이 딸 셋을 낳고 아들을 낳았다. 빠듯한 살림에 아이 넷을 건사하려니, 자그맣고 약한 엄마 힘에 부치기도 했을 테고, 아빠와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아 어린 내 눈에 엄마는 늘 화가 나 있는 사람 같았다. 맏딸이었던 난 어려서부터 엄마 눈치를 살피며 자랐다. 조금이라도 엄마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아빠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나라도 착하고 고분고분 말 잘 들어야 엄마가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라면서 겪었을 억울함, 답답함, 슬픔, 분노 따윈 마음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묻어 버렸다.
그렇게 묻어 둔 꼴 보기 싫은 감정들이 혼자 생활할 땐 별 문제없었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부턴 불쑥불쑥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자전거 열쇠 하나 간수하지 못했다고 아이를 무지막지하게 손찌검했던 날처럼 오랜 세월 동안 내 안에 묵혀둔 나의 분노는 그렇게 예고도 없이 무섭게 폭발했다.
결혼 전부터 아이를 낳게 되면 절대 엄마처럼은 키우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었다. 아이에게 절대 이유 없이 큰 소리를 치거나, 함부로 아이를 때리는 폭력적인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과는 달리 하루에도 몇 번씩 소리 지르고 때론 협박까지 서슴없이 하는 소위 나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기는커녕, 어릴 적 무섭기만 했던 엄마를 닮아가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매달린 게 인터넷 쇼핑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매일 문 앞에 택배 상자가 쌓여있었고, 아이를 돌보는 건 뒷 전이고 내 눈은 늘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아무리 인터넷 쇼핑을 해도 허허로운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괴롭고 답답한 마음은 점점 더 깊어졌고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유 없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아이와 함께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그렇게 원하던 아이를 낳아 키우면 행복하고 늘 웃는 일만 계속될 줄 알았던 일상이 하루하루가 내겐 지옥처럼 느껴졌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렀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꼬맹이가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다. 엄마보단 친구가 좋을 나이라 아무래도 어릴 때보단 손이 덜 가지만, 또 다른 모양의 걱정과 근심의 파도는 항상 밀려온다. 아들이 잘못된 친구를 사귀는 건 아닌지, 하루에 게임을 몇 시간이나 하는 건지, 학원 숙제는 잘하고 있는 건지 걱정을 쫓자면 한도 끝도 없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달라진 게 있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쫓아가는 대신, 생각일 뿐이란 걸 알아차리고, 멈출 수 있게 되었다. 마음에 일어난 생각을 멈추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들을 보면 아들은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로 감동이고, 사랑이다.
세상은 고정된 것 없이 흐르고 있고, 나도 아들도 그 흐름 속에 있다. 때론 힘겹고 고달픈 날도 있지만, 일상의 흔들림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도라고 이름 붙여진 텅 빈 충만은 저 멀리에 있지 않다. 지금 여기에 피고 지는 모든 것이 도이다.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만 있다면 그 자체로 평화요, 자유요, 행복이다. 눈 앞에 펼쳐진 온 대지를 적시고도 남을 만큼 하늘에서 쏟아지는 도를 지금 이 순간 온몸으로 만끽하기만 하면 된다.